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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비정상과 정상

박근혜 대통령이 엊그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여러 분야에서 비정상적 관행을 정상화하는” 개혁을 언급했대서 ‘비정상과 정상’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쁜’ 비정상을 ‘좋은’ 정상으로 바로잡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문득 1982년 고려대 총장을 지낸 김상협 총리의 “굽은 데는 펴고 막힌 곳은 뚫겠다”는 취임사가 생각난다. 이 말은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다. 박 대통령이 말한 ‘비정상의 정상화’와 통하는 게 있다. 하지만 1년여 재임 동안 그가 뭘 제대로 펴고 뚫었다는 평은 못 들었다. 하긴 서슬퍼런 5공 때 힘없는 학자 총리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 사례는 멋들어진, 또는 결의에 찬 수사와 그 실천은 전혀 다른 문제임을 보여준다. 필시 그 실행을 위한 조건 때문일 거다. 그 조건이 충족되면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막힌 곳은 뚫릴 것이다. 아니면 한낱 허언으로 끝나버리고. 

 

현대차의 불법파견 인정과 신규 채용 중단을 요구하며 296일간 현대차 울산공장 송전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최병승(왼쪽), 천의봉씨가 지난 8일 사다리차로 철탑농성장을 내려오고 있다. 이들의 투쟁은 회사측의 완강한 태도로 아무 소득이 없었다. 이런 중대한 노동문제는 방치한 채 외쳐지는 '여러 분야의 정상화', 뭘 정상화한다는 것일까.


그 조건은 뭘까. 가장 중요한 건 지도자의 눈, 인식이라고 본다. 그것을 ‘예리한 감식안’으로 불러도 좋겠다. 그것은 어떤 문제의 본질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 능력은 꼭 ‘앉아서 구만리를 내다보는’ 신통력의 경지일 필요는 없다. 국가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라 열린 자세로 민심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일이다. 참 쉽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만약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역사에 명멸했던 그 수많은 개혁 의지와 구호들은 모조리 성공했을 터이다.

치명적인 적이 있다. 바로 불통과 독선이다. 그것이 통찰력을 가로막는다. 그런 지도자는 정상·비정상 구분도 선별적으로 한다. 즉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의 정상·비정상 여부만 따진다. 불통과 독선이 세상 곳곳을 폭넓고 균형적으로 살펴야 하는 지도자의 덕목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저 하늘 철탑으로 올라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96일을 싸우고도 빈손으로 내려왔다. 민생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 눈에 이런 결말은 정상적인가. 그가 ‘증세없는 복지’ 논란에 대해 “무조건 증세부터 얘기할 게 아니다”라고 한 것은 불통 자세의 단적인 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무조건’ 증세를 주장한 게 아니라 조목조목 증세없는 복지의 한계를 설명했음에도 그렇기 때문이다. 목하 국정원 사태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이래선 어떤 정상화도 자기만의 정상화로 끝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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