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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반대로 민주당의 인식은 차례상 차리기도 힘든 물가폭탄에 수도권 물폭탄으로 민심이 최악이란 것이다. 어느 쪽이 진실에 더 가까울까. 민심을 정확하게 측정하기는 어려우나 간접적으로 추측할 자료들은 있다. 며칠 전 헤럴드경제 조사에 따르면 이 정부 출범 후 가계경제가 ‘나아졌다’는 응답은 7.2%였다. ‘별 차이가 없다’는 64.4%, ‘더 나빠졌다’는 25.2%였다. 전체의 89.6%가 별 차이 없거나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민층을 상대로 한 다른 조사에서도 ‘경기회복세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응답자가 84.3%나 됐다. 이들은 물가상승(64.3%)을 시급한 해결과제로 꼽았는데 당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건실한 2%대다. 지표와 체감물가가 따로 노는 것이다.
비정규직 비율 OECD 평균의 3배
그렇다면 이런 우울한 추론도 가능하다. 상당수 국민에게 풍요로운 수확을 누리고 조상의 음덕(蔭德)을 기리는 민족 최대 명절이 적지 않은 한숨거리가 됐으리라는. 또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아 즐거운 기업인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소수일 뿐이고, 다수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말에 공감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그 점에서 명절은 이 사회 양극화의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계기인지도 모른다.
전망은 어떤가. 서민들 살림살이가 나아져 풍족한 차례상을 차릴 가능성은 있나. 유감스럽게도 이 부분에 대해서도 밝은 전망을 내놓기가 어렵다. 여러 통계수치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5분위배율은 1997년 4.09에서 1998년 4.94로 높아졌고, 2008년엔 6.2를 기록했다. 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 미만인 가구의 비율인 상대빈곤율도 1992년 7.7%에서 2008년 14.3%로 높아졌다. 그러나 소득분배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매우 미약하다. 2007년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의 8.0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대비 38% 수준이었다. 사회복지 지출이 근래 몇 년 동안 12% 이상 가파르게 증가한 것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학교 무상급식이 이슈가 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모처럼 일기 시작한 복지 담론을 일거에 무력화할 수 있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다. 한국은 이 비정규직 비율이 너무 높다. 33.6%로 OECD 평균의 3배나 된다. 임시·일용 근로자까지 비정규직에 포함시키는 노동계 통계로 보면 49.8%로 정규직 비율 50.2%와 비등하다. 정규직 월평균 급여는 266만원, 비정규직은 123만원이다. 이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노동조건도 악화하고 있다. 착취당하면서도 늘 해고불안에 시달린다. 8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은 ‘고용난민’이라 부르는 게 적절하다. 이 비정규직을 노동유연성의 이름으로 온존시킨 경제체제에서 무슨 무슨 복지를 말한다는 게 우스꽝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빈곤한 차례상은 사회에도 책임
우파들은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고 말한다. 빈곤은 개인은 물론 나라의 힘으로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는 ‘성공과 실패는 오직 자기 할 나름’이란 논리와 통한다. 여기서 더 나가면 ‘억울하면 출세해라’가 될 거다. 그러나 그런 논리가 득세한 각박한 사회는 새로운 빈곤층을 계속 양산할 것이다. 이들은 분노 속에 우린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뼈저린 좌절을 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 이런 것이 소망스러운 사회, 선진 사회로 가는 행로일 리 없다.
나는 빈곤한 차례상의 책임이 사회에도 있다고 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조상님의 음덕을 기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행 수단은 없이 중도, 서민, 공정 구호를 남발하며 기만을 일삼는 이 좌우부동시(左右不同視) 정권을 똑바로 봐야 한다. 그러면 해답은 자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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