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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4대강 속도전 강박증

4대강 사업과 세종시 건설. 어떤 것이 더 중요할까. 다소 뜬금없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응답자가 어느 지역에 사는가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많은 충청도 사람들에겐 세종시가 훨씬 중대한 현안이 될 것이다. 다른 지역은 이해관계나 관심, 정치성향에 따라 답이 갈리리라.
그러나 정권 차원에선 이미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나 한다. 지난달 말 국회에서 정부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됨으로써다. 이로써 세종시 문제는 원안 추진으로 돌아섰다. 반면 4대강 삽질은 장마철도 상관없이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다.

혹자는 이 양상을 아이들의 옛날 모래장난 노래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를 패러디해 ‘세종시 줄게 4대강 다오’로 표현했다. 말하자면 저들이 어쩔 수 없이 세종시를 양보했지만 4대강 사업만은 반드시 관철하고 말겠다는 각오란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 내정자가 매우 시사적인 발언을 했다. 그는 지난주 라디오 인터뷰에서 “세종시는 원안으로도 충분히 자족기능을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충청 지역구 의원 출신다운 모범답안이자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케 할 만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는 4대강 발언으로 즉각 만회했다. “자꾸 강을 죽이는 사업이라고 하는데 살리는 사업이다. 찬성 지자체장이 반대보다 많다. 찬성하는 현장 국민들이 절대 다수가 많다. 피켓 들고 으쌰으쌰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소수다.”

집권세력, ‘소수만 반대’로 왜곡

보기에 따라서는 지역구 민심도 사고 대통령의 굳은 4대강 결의도 뒷받침하는 두 마리 토끼 잡기식의 현명한 처세다. 그러나 4대강 사업에 대한 천편일률적 논리, 아마추어리즘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의 4대강 논리는 집권세력의 대략적 인식수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소수의 활동가만 4대강을 반대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이 아니다. 여론조사에서는 지속적으로 반대의견이 높은 것으로 나온다. 찬성하는 지자체장이나 ‘현장 국민’이 많다고 했지만 강은 수변지역, 곧 강이 지나가는 지역 주민들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외면한 논리다.

4대강 사업 반대에 대한 대응논리로 자주 나오는 것이 성공한 개발사업들의 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방선거 패배 후 첫 방송연설에서 경부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 고속철도 등 국책사업이 처음에는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성공했다며 4대강 사업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지극히 초보적 수준의 ‘일반화의 오류’다.
경부고속도로와 4대강 사업은 성격이 판이하며 반대 이유 또한 그러하다. 두 사업 사이의 공통점은 단지 반대에 부닥친 국책사업이란 사실 하나뿐이다. 그 닮은꼴 하나가 4대강 사업의 성공을 담보한다는 건 터무니없다.

이 정권은 입버릇처럼 녹색과 생명을 말한다. 그렇다면 4대강 사업은 본질적으로 개발이 아닌 보전을 위한 사업이어야 한다.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경부고속도로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럼에도 “물과 환경을 살리는 사업”이라며 장마철에 속도전을 펴는 건 어불성설이다.
수많은 이 땅의 개발사업들이 그 잘난 속도전의 깃발 아래 행해졌다. 그리고 날림공사로 무너져내렸다. 하물며 4대강 정비는 개발이 아니라 보전을 위한 사업이다. 이것마저 임기 내에 완공해야 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묵살하고 불법·편법을 저지르며 40년 전 고속도로 깔듯 속도전으로 나가야 하나.

실패할 경우의 해악성이란 측면에서 4대강은 세종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세종시가 본질상 수도권집중 완화와 국토균형개발이란 인문지리적 문제라면 4대강은 우리와 후손의 ‘생태적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생태적 존재에는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단양쑥부쟁이 같은 동식물까지 포함돼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발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되돌릴 수 없는 자연파괴를 성찰해야 한다.

되돌릴 수 없는 자연파괴 성찰을

문수스님 소신공양 국민추모문화제

지난 주말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유서를 남기고 소신공양한 문수 스님의 추모제와 49재가 전국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성명서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4대강 개발을 반대하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에 눈과 귀를 열고 공사중단과 국민합의라는 용단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대통령은 이런 호소를 외면하고 끝내 공사를 강행할 것인가. 그 4대강 속도전의 강박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 끝을 어찌 감당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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