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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보수의 최소 조건

이른바 전향한 운동권 3명이 몇 달 전 <친북주의 연구>란 책을 썼다. 저자 홍진표의 경우 “주사파 지하조직 반제청년동맹과 민족민주혁명당에서 김영환과 함께 활동하다 1996년 북한체제의 실체를 깨닫고 북한의 인권 및 민주화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소개돼 있다.

조선일보 주필을 지낸 류근일씨는 추천사에서 “친북, 종북이 공안당국자까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반독재 투쟁에서 사선을 넘었던 저자들 같은 프로들의 눈은 절대 속일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들이 “급진파 학생운동의 최전방에서 활동한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실체와 아류(亞流)가 뒤범벅돼 있을 때 실체를 골라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찬사대로 책은 ‘안보의식 실종의 주요 요인인’ 친북(종북)주의의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이들이 사명감을 갖고 북한의 기형적 사회주의와 친북의 실체를 규탄, 폭로하는 걸 뭐라 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런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즉 오늘 한국사회의 순항을 막는 건 준동하는 친북·좌파세력 탓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보수세력의 부재 탓이란 생각이다.
1994년 당시 박홍 서강대 총장이 “주사파 5만명이 학계와 정당, 언론계, 종교계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폭로’한 이래 그 증감폭은 잘 알 수 없되,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주류인 보수세력이 똑바로 서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류근일씨의 친북 아류 판별론을 원용해 참보수 판별론을 제기하고 싶다. 수많은 보수주의자들 가운데서 가짜 보수, 보수 참칭자를 가려내야 하며 그럼으로써 진짜 보수가 존경받는 사회풍토가 조성될 수 있다는 뜻에서다.

가짜 보수·보수 참칭자 가려내야

그러나 누가 참보수인지를 가려내는 일이 쉬운 게 아니다. 목하 너도 나도 보수를 자처하는 시대다. 한나라당은 보수정당인가. 정강·정책 상으로는 그렇지만 실제로는 의심스럽다. 보수가 최소한 갖춰야 할 덕목, 곧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지도층의 기득권 포기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병역기피가 명백한 안상수 의원을 당대표로 뽑은 게 한나라당이다. 낯뜨거운 성희롱 발언 파문을 일으킨 강용석 의원 징계를 20일이 넘도록 뭉개고 있다. 보수에는 최소한의 진중함과 품격도 필요하다. 이 정권은 천안함 사태 후 일련의 조사 및 대응 과정을 지나치게 서두름으로써 외교적 실패를 자초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국가라는 대기업을 경영하는 CEO 대통령을 자처한 바 있거니와 그에게서 그 이상 깊이 있는 보수주의적 가치관을 찾아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른바 보수지로 분류되는 신문들은 어떤가. 작년 말 한 조사에서 조선일보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보수라고 답한 기자가 36.4%였고, 중도라는 대답은 63.6%, 진보라는 응답은 없었다. 이만하면 탄탄한 보수적인 논조를 가졌을 거라고 보겠지만 실상은 극우적이며 자사 이기주의에 충실한 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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