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가 푸대접받고 외면당하는 시절이다. 중요한 사회적 논란에서 논리는 쉽사리 무시되고 그 자리를 비논리와 강변, 식언, 변명, 독선이 차지한 듯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4대강 사업 논란에서도 논리는 초라하다.
<경향신문 DB>
초등학생을 위한 논리학습서로 지금은 고전이 된 <반갑다 논리야> 시리즈엔 이런 예문이 있다. “꽃이 피면 봄이 온다고들 한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꽃이 핀 것을 보고 겨울에 쓰던 난로며 두꺼운 옷을 몽땅 싸 두었다. 그런데 한참 동안 겨울날씨는 계속되었다.” 그러곤 이를 통해 성급한 판단의 오류를 깨우쳐 준다. 길에 꽃 핀 것만 보고 봄이 왔다고 판단하는 것은 비약이다. 다른 주변 상황도 두루 살펴야 한다. 꽃 하나로 모든 꽃을 일반화한 것도 잘못이다.
G20이 내일 서울에서 열린다. 이로써 한국은 선진국이 되는가, 또는 선진국으로 가는 티켓을 확보하게 되나. 아니면 이로써 선진국에 버금가는 국격(國格)을 과시하게 됐나. 아니다. G20 개최와 선진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냥 중요한 국제회의가 열리는 것뿐이다. 꽃이 피는 게 곧 봄이 왔음을 뜻하는 게 아니듯 G20 열었다고 곧 선진국 반열에 드는 게 아니다.
즉 G20 개최와 선진국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상관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역사적’ G20 개최에 감격하고 방송과 공무원들은 여기에 보조를 맞추느라 법석을 떤다. 선진국의 조건과 개념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도리어 이렇게 ‘촌스럽도록’ 국민 총동원체제라도 가동한 양 행동하는 게 더 후진적이고 남우세스러운 일 아닌가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민이 이런 비논리성을 이미 간파한 것 같다는 점이다.
즉 G20 개최와 선진국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상관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역사적’ G20 개최에 감격하고 방송과 공무원들은 여기에 보조를 맞추느라 법석을 떤다. 선진국의 조건과 개념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도리어 이렇게 ‘촌스럽도록’ 국민 총동원체제라도 가동한 양 행동하는 게 더 후진적이고 남우세스러운 일 아닌가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민이 이런 비논리성을 이미 간파한 것 같다는 점이다.
G20 개최와 선진국과는 무관
4대강 사업에서도 논리가 실종됐다. 대통령은 지난달 말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4대강 사업은 생명살리기”라며 “내년에 사업이 완공되면 국민은 푸른 자연과 함께 한층 여유 있는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업이 생명살리기가 아니라 죽이기라며 반대론자들이 펴는 논리는 일절 무시한 것이다. 논리란 사고나 추리를 ‘이치에 맞게’ 이끌어 가는 것이다.
지도자가 국민을 설득하려면 그냥 우기면 되는 게 아니다. 나름의 논리가 필요하다. 법에 따른 예비타당성 조사를 무시하고 환경영향평가도 부실하게 한 국책사업을 강행하는 데는 최소한의 논리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건 없다.
그게 안타까웠는지 조력자들이 희한한 논리를 들고 나왔다. 며칠 전 ㅈ일보 칼럼은 “4대강 사업의 핵심인 보 건설 진척률은 56.8%”라며 이미 세워놓은 구조물들이 물 소통 장애요인이 되고, 홍수가 나면 피해를 가중시키므로 사업 중단은 있을 수 없다는 논지를 폈다. 공사가 이미 많이 진척됐으므로 ‘버스 떠난 격’이란 것이다. 딱하고도 무지막지한 논리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등 수많은 생명 파괴 반대 의견들을 묵살하고 속도전을 펴더니 중단 불가 논리가 속도전을 편 결과라니. 전형적 순환논리의 오류라고 할 수 있지만 너무 단순해서 궤변론자의 말장난이라고 하기조차 뭣하다.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협상 대표 민동석씨를 “소신을 지킨 사람”이라며 외교통상부 2차관으로 발탁한 것도 설명이 안되는 비논리의 전형이다. 비논리는 전염력이 강한 듯하다. 요즘 ‘배째라’식 비논리가 곳곳에서 판을 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국방부는 천안함 사고 조사 결과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는 결정적 증거물이 될 ‘1번 어뢰’ 추진체의 가리비를 함부로 제거해 버렸다. 광화문 현판이 갈라진 사건은 누가 봐도 마르지 않은 소나무를 쓴 탓으로 판단되건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강변한다. 우기면 된다는 태도가 일상화한 것이다.
곳곳 비논리 횡행, 시대 역행 사례
이런 비논리의 일상화야말로 제대로 된 선진화의 적이다. 이 정권은 지금까지 법치니 서민 민생이니 공정이니 여러가지 구호를 내놓았다. 한나라당은 최근 진보까지 아우르는 개혁적 중도 보수 노선을 천명했다. 그런 잡탕식 노선 추구가 안되는 이유가 있다. 실행 이전에 논리가 서지 않기 때문이다.
5공 시절엔 논리가 필요 없었다. 힘이 논리였다. 그런 점에서 지금 도처에서 비논리가 횡행하는 것은 또 하나의 시대 역행 사례다. 지도자가 진심이라고 생각하면서 말해도 논리가 안 닿는 말이 반복되면 신뢰를 잃는다. 그게 심해지면 무슨 말을 해도 사기로 느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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