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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김수영 시와 시론에서 윤석열 파면을 읽다

 먼저 김수영의 시 한 편을 읊어보자. 1965년 발표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이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데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앞에서
 <중략>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만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이 시는 여러모로 힘없는 소시민의 애환을 더없이 잘 그려내고 있다. 

                                                                 시인 김수영

 블로거 <안토니오와 사람들>은 지난해 말 이런 평을 내놓았다. 
 “어느 매체에서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중 한 명, 김수영. 그분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새삼스럽게 다시 읽어 봅니다. 암울했던 시기, 불의를 보고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독백이죠.
 이 시인의 독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야. 다 똑같지 뭐. 관심 없어. 먹고사는 게 중요하지’. 이런 분들도 있을 수 있고요. 물론 행동하지는 못하지만 침묵하는 다수가 많겠지만요. 
 이번에 우리 젊은이들이 보여준 용기, 국가와 자유를 향한 열망 그리고 질서 있고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며 또한 생각을 해봅니다. 그들에겐 현실적으로 취업 등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하겠지요.
 <중략>
 독일의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본 훼퍼(Dietrich Bonhoeffer). 히틀러를 끌어내리기 위한 조직과의 연관성 때문에 사형을 당하신 목사님이시죠. 그분은 ‘목사가 술 취한 운전사에게 치여 죽은 사람들을 위한 영혼기도도 중요하지만, 그 운전사의 운전대를 빼앗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하였지요.
 ‘서울의 밤(martial law)’은 아직 진행형입니다. 그러나 지금껏 역사를 뒤돌아 보면 항상 정의가 승리해 왔습니다. 비록 역사의 후퇴로 많은 대가를 치렀지만. 다만 시간이 얼마이냐 일뿐이었지요.
 All that is now hidden will someday come to right<Mark 4:22>. 숨긴 것은  나타나고, 비밀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 난다.”

 3년 뒤 김수영은 <시여, 침을 뱉어라-힘으로서의 시의 존재>란 시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작(詩作)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그것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라고. 그 결과로 자신은 참여시의 옹호자라는 달갑지 않은, 분에 넘치는 호칭을 받고 있다고 했다.(이 글은 1968년 4월 13일 부산에서 펜클럽 주최로 행한 문학 세미나에서 발표한 원고이다. 김수영은 두 달 뒤인 6월 술마시고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숨진다. 향년 48세.)
 이 시론은 이어진다. “자유는 고독한 것이다. 그처럼 시는 고독하고 장엄한 것이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 지루한 횡설수설을 그치고, 당신의, 당신의, 당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다. ...자아 보아라, 당신도, 당신도, 당신도, 나도 새로운 문학에의 용기가 없다. 이러고서도 정치적 금기에만 다치지 않는 한 얼마든지 <새로운> 문학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치적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 시론을 이렇게 끝낸다. “나도 여러분도 시작하는 것이다.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김수영을 원용한 건 요즘 정치 상황이 매우 비슷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내란수괴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을 돕겠다며 서울지법에선 폭동까지 벌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탄핵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