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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아름다운 퇴장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 것은 1985년 3월, 만 54세 때였다. 60~70대가 서기장에 오르던 과거 관례에 비추어 이는 대단한 파격이었다. 전임 체르넨코 서기장은 급사할 당시 73세였다.
그에 앞선 안드로포프도 70세 가까운 나이에 서기장이 됐다가 병사했다. 병약한 브레즈네프 서기장은 1982년 76세로 작고할 때까지 18년간 재임했지만 마지막 7년간은 통치능력을 거의 상실한 채 측근들에게 정무를 맡겼다. 

옛 소련은 그런 점에서 ‘노인 정치’ 국가였다. 이것은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부도옹 덩샤오핑이 1997년 92세로 사망할 때까지 중국을 지배한 것은 70대 노인들이었다.
장쩌민이 2005년 국가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후진타오에게 물려줄 때 나이는 79세였다. 후진타오가 60대 초반에 당·정·군 3권을 장악한 것은 따지고 보면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후주석을 정점으로 새로운 ‘혁명 4세대’가 뜬 것이다.


노인 정치의 경향은 사회주의 국가의 두드러진 특징이 아닌가 한다. 1인지배 체제라 의미가 적다고는 하지만 북한의 ‘권력서열’을 보아도 이 사실이 확인된다. 북한 권력 엘리트들은 대부분 70대이며 80대도 여럿 눈에 띈다. 이 노인 정치는 경륜과 진중함이 장점일 것이다. 또 이런 입장에서는 ‘새 피’를 수혈해야 한다는 세대교체론을 ‘구상유취(口尙乳臭)’라는 말로 간단히 무시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고 간다’는 것은 세상사의 정한 이치다. 때가 되면 용퇴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노땅들은 그만 가라”는 식의 대접을 받게 되면 반발심만 키우게 된다.

베트남 정치권력의 핵심인 쩐득르엉 국가주석(69)과 판반카이 총리(72), 응우옌반안 국회의장(68)이 한꺼번에 공식 사임했다. 젊은 지도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도이머이(개혁개방) 정책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들은 임기가 남아있는데도 은퇴를 결정했다. 비록 예견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아름다운 퇴장’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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