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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문재인 대통령vs 윤석열 검찰총장

조국 법무부 장관이 사퇴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을 위해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지난 주말 많은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다시 촛불을 들고 “이제 국회가 검찰개혁 법안 통과를 위해 힘써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반면 광화문 광장에서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연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잘하고 있는 검찰을 두고 ‘옥상옥’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제멋대로 법을 주무르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개혁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것은 오래된 일이나 번번이 좌절했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이후 20년 간 이루지 못한 역대 정권의 숙제였다. 노무현정부 때도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공직자부패수사처’를 신설하려 했으나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이 “검찰의 권한 약화를 노린 것”이라며 반대해 무산됐다.

특기할 것은 이명박정부 시절 정권 핵심인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공수처법을 발의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현역인 심재철·김성태·김영우 한국당 의원 등이 동참했다. ‘정치 검찰’을 개혁하기 위해 공수처 설치가 필요하다는 데 여야, 보수·진보를 떠나 공감대가 형성돼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윤석열 검찰총장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강창광 한겨레 선임기자 chang@hani.co.kr

공수처 설치는 검찰개혁의 핵심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시민 다수가 지지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서도 공수처 설치법안 처리는 찬성 응답이 79.6%였다. 이 때문에 시민들이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라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몰려간 것이다. 그런데 한국당은 공수처가 ‘장기집권 사령부’(나경원 원내대표)라며 절대 불가를 외치고 있다.

대검 개혁방안은 국민 기대에 못미쳐

그러나 이 칼럼의 주제는 야당의 변덕과 몽니가 아니라, 공수처를 권력기관 개혁 1호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에 대한 비판이다. 문 대통령이 검찰개혁을 너무 쉽게 생각한 듯 보인다는 말이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이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저는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환상적인 조합에 의한 검찰개혁을 희망했다”며 “꿈같은 희망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검찰개혁 방안의 결정 과정에 검찰이 참여함으로써 검찰이 개혁 대상에 머물지 않고 개혁 주체가 된 점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도 했다. 이 말은 지난달 30일 당시 조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해 주길 바란다”고 검찰총장에게 지시한 것의 연장선에 있다. ‘개혁 대상이 만드는 개혁안’? 당시에도 이 지시가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어찌된 까닭인지 검찰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은 것이다.

이 지시에 따라 이튿날 대검이 내놓은 개혁방안은 역시 국민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었다.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을 제외한 전국 모든 검찰청에 설치된 특수부를 폐지하고, 외부 파견검사를 전원 복귀시켜 형사·공판부에 투입하겠다는 것 정도였다.

2013년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사건이 터지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원은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개혁안을 스스로 마련해주기 바란다”고 지시한 일로 아연했던 적이 있다. 당시 국정원 사건과 지금 검찰개혁을 평면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차이가 없다. 권력기관이 스스로를 개혁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보수·진보 어느 쪽도 아닌 ‘검찰주의자’

윤 총장의 인물론도 논란거리다. 알려진 대로 검찰은 조 장관 가족에 대해 두 달 가까이 먼지털이식 수사, 11시간의 압수수색, 웅동학원에 대한 별건수사 등을 무차별적으로 펼쳤다. ‘조국 사태’에 대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검찰·언론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제압하려 한 사건”이라고 보았다. 그 말에 동의하면서 나는 대쪽검사로 알려진 그의 실체가 ‘법은 곧 정의’라는 신념을 체화한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그는 보수·진보 어느 쪽도 아닌 ‘검찰주의자’이다. 그가 과거에 했다는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조직을 사랑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는 겉으로는 검찰개혁에 긍정적이지만 속마음은 개혁 반대쪽일 개연성이 있다.

2019-10-21 10:00: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