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은 지켜야 한다. 이 말이 새삼스러운 이유는 안 지켜지는 공약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올해 초 청와대는 대선 공약사항인 광화문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보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경호와 의전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최저임금 공약도 파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수석·보좌관회의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시급) 1만원을 이룬다는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면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내년도 최저임금이 8590원으로 결정됐을 때도 다시 사과했다.

공약은 지키는 게 당연하지만 예산 문제나 사정 변경 등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도 한다. 문재인 대선 후보도 2017년 4월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나라를 나라답게’를 내놓았다. 387쪽 분량에 4대 비전과 12대 약속, 201개의 실천약속을 담았다. 이를 ‘세부약속’으로 나누면 888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상당수는 잊힐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정권의 명운을 걸고 지켜야 할 공약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공약집 발간사에 언급된 ‘촛불민심’을 구현하는 공약들 말이다. 최저임금 공약은 사소해 보일 정도로 중요하고 포괄적 의미를 담은 공약이 있다. 바로 ‘비정규직 감축 및 처우개선’ 공약이다.

광화문 광장서 전국노동자대회…5만3000명 참석 7월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노동자 총파업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비정규직 철폐, 차별 해소, 처우 개선 등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어올리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민주노총 추산 5만3000명이 참가했다. 김정근 선임기자

문 대통령은 취임 사흘째인 2017년 5월 12일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공항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는 “우선 공공부문부터 임기 내에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인천공항공사는 비정규직 비율이 85.7%로 공공기관 가운데 가장 높았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구체적 각론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간단치 않다.

월급쟁이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

인천공항공사와 노사는 그 뒤 협력사 비정규직 1만명 가운데 보안·검색 인원 등 3000명을 직접 고용하고 나머지 비정규직 7000여명은 자회사 2곳 소속으로 정규직 전환을 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노조는 ‘비정규직 제로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자회사 정규직이 됐을 뿐 사실상 간접고용 노동자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무늬만 정규직화’다.

공약집엔 이렇게 쓰여 있다. “상시·지속적 업무 정규직 고용원칙 정착으로 비정규직 규모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감축하겠습니다” OECD는 ‘임시 노동자’란 개념을 쓰고 있는데, 2017년 기준 한국의 임시 노동자 비중은 20.6%로 OECD 국가 평균보다 2배가량 높다.

또 함부로 비정규직 노동자를 늘릴 수 없도록 하는 ‘사용사유 제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으나 진전이 없다. 며칠 전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사용사유 제한 4법’을 발의했을 뿐이다.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을 제정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한다고 했으나 관련된 법제도 개선안도 소식이 없다.

비정규직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것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비정규직은 661만4000명으로 전년보다 3만6000명 늘었다. 2008년(544만5000명)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110만명 이상 증가했다. 비정규직 비율도 2014년 32.2%에서 꾸준히 소폭 올라 지난해 33%였다. 월급쟁이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인 셈이다. 지난해 임금노동자의 월평균 급여는 정규직이 300만9000원, 비정규직이 164만4000원이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월 급여는 2010년 이래 54%~56%로 정규직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한국사회가 회피해서는 안되는 문제

이렇게 차별받는 게 일상인데다 정규직화 또한 더디고 이름뿐이다. 이런 상황이 큰 규모의 파업을 불러온 것은 필연이었다. 지난달 초 급식실에서 일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한 공공무문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사흘 동안 역대 최대 규모로 총파업을 벌였다. 비정규직들은 “학교 안은 카스트처럼 계급이 나눠져 있다”, “우리는 ‘급식실 이모님’으로 불린다”며 처지를 개선해 달라고 호소했다.

비정규직 해결,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사회가 절대로 회피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정부는 이 공약 이행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두려운 것은 무능 좌파정권이라며 장외투쟁을 일삼는 한국당이 아니다. 비정규직이 넘치는 현실이다. 2019-08-21 05:00:16 게재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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