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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방위비분담협상, 느긋한 자세가 필수다

분담이란 건 ‘나누어서 맡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수준은 분담이 아니라 숫제 ‘전담’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4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4차 회의를 마무리했다” 이 보도 문장에 겹따옴표를 씌운 이유는 설명이 필요해서다. 한·미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에 관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데, 올해 협상은 유별나다. 미국이 터무니없이 많은 분담금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길래 그러나. 내년도 분담금으로 올해 분담금(1조389억원)의 5배가 넘는 50억달러(약 5조9천억원)를 요구 중이다. 두말할 것 없이 ‘거래의 달인’이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작품이다.

양국은 1991년부터 2~5년 간격으로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을 맺어왔다. 올 3월 체결된 제10차 협정에서는 분담금이 처음으로 1조원을 넘었다. 협정 유효기간도 처음으로 다년 계약이 아닌 1년으로 짧아져, 9월부터 다시 협상에 들어갔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3차 회의는 미국 협상팀이 일방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바람에 결렬됐다. 이번에도 미국 측은 완강했다. 이달 중순 서울에서 5차 회의가 열린다.

‘터무니없이 많은’ 분담금이란 말은 맞나. 관측통들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그렇다고 말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달 21일자 사설에서 트럼프가 ‘outrageous demand’를 한다고 비판했다. 번역하면 ‘터무니없는 요구’다. 신문은 트럼프의 과도한 방위비 요구가 동맹국을 모욕하고 해외 주둔 미군을 용병으로 격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방위비분담금 인상 강요 미국 규탄 결의대회│11월 30일 서울 중구 미국대사관저 인근에서 열린 한미동맹 파기, 방위비 분담금 강요 미국 규탄 민중당 결의대회 민중당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분담이 아니라 숫제 ‘전담’하라는 것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도 비판 의견을 쏟아냈다.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분담금 산정을 위한 포뮬러(공식)에 대한 상호 양해도 없이 금액을 제시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트럼프는 동맹을 부동산 거래처럼 본다. 모든 게 마피아 같은 거래관계다”라고 비판했다.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은 “미국 협상단도 자신들의 요구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방부가 3월 의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주한미군 전체 운영 유지비는 22억2000만여달러다. 주둔 비용을 절반씩 부담한다 손쳐도 우리는 11억달러(약 1조2875억원)만 내면 된다. 참고로 얼마 전 조정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운영예산은 25억달러였다. 미국이 요구하는 50억달러는 나토 30개국이 공동 부담하는 액수의 2배나 된다.

우리 편도 성찰할 부분이 있다. 특히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으로 인한 불안심리가 문제다. 리영희 교수는 생전에 “지난 수십년 간 남한은 주한미군의 존재 없이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기최면에 빠져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한·미관계에 불협화음이 일 때마다 미국 측에서 ‘미군 철수’라고 한마디 외우기만 하면 한국 정부와 대중은 경기(驚氣)라도 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리 교수 이야기를 좀 더 하겠다. 미군 철수 논쟁이 그만큼 오래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한미군과 한국의 안보는 한국의 국익이 아니라 미국의 국익에 따른 것이라고 단언했다. 여기서 국익이란 한반도 전쟁 억제를 통한 동북아 지역 안보·패권 유지란 사실은 미국 정부 당국자들도 공언해 온 바다. 이 정세분석은 지금도 유효하다.

미군 철수나 감축에 대해 의연한 모습

시대가 바뀐 걸까, 과거와 달리 여론은 미군 철수나 감축에 대해 의연한 모습이다. 지난 달 말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6.8%가 ‘미군이 감축된다고 해도 미국의 방위비 대폭 인상 요구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응답했다. MBC는 여론조사 결과 주한미군은 미국이 필요해 주둔시킨 것이라 감축해도 상관없다는 답이 55.2%였다고 보도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한 칼럼에 이렇게 썼다. “연애든 협상이든 매달리는 쪽이 불리해진다. 두 나라가 협상할 때 국민의 반대가 큰 쪽이 협상력도 커진다. 국민의 반대 목소리를 내세우면 상대방의 양보를 더 받아낼 수 있다는 논리다” 요컨대 협상 준비는 치밀하게 하되, 임하는 자세는 느긋할 필요가 있다. 바로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전략이다. 2019-12-10 10:00: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