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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의사의 길, 지식인의 길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병사인지 외인사인지는 엄밀히 말해 논란이라고 하기도 그렇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수많은 의료 전문가들은 물론 의대생들까지 직접사인은 급성 경막하출혈이며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주치의인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는 병사라는 소신을 바꿀 의향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왜 그럴까.

나는 백 교수가 스스로 이미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사망진단서가 오류임을 실토했다고 본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만약에 환자분이 급성 경막하출혈 후 적절한 최선의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을 하게 되었다면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로 표기했을 것입니다."

그는 치료과정을 길게 설명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만약 환자가 체외투석 등 치료를 받았어도 사망했다면 외인사다. 그러나 가족들이 치료를 거부해 죽었으므로 병사다. 어떤 의사는 이걸 '의학사에 길이 남을 거짓말'이라고 표현했다.


 

3일 서울대학교병원-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언론브리핑에서 위원장 이윤성 교수와 주치의 백선하 교수(오른쪽)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망진단서의 양식상 '사망의 종류'는 병사, 외인사, 기타 및 불상 등 3가지다. 환자의 사망이 질병 말고는 다른 외부 요인이 없다고 판단될 때만 '병사'라고 쓰는 게 의료계의 관행이자 상식이다. 외상의 합병증으로 질병이 발생해 사망했으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외인사'다. 서울대 의대생들이 성명에서 "이것은 모두 저희가 법의학 강의에서 배운 내용입니다"라고 밝힌 대로다.

그럼에도 추가적 치료를 했다면 외인사인데 안 했으므로 병사란 주장은 황당한 논리다. 이로써 이 진단서는 물대포로 과잉진압한 경찰의 책임을 '의학적으로' 가족들에게 전가했다. 그 후과는 무엇이었나. 부검을 고집할 근거를 검경에 제공했다.

권력 앞에서 진실 말하기 두려워해

청년 극우단체 대표는 고인의 자녀들을 살인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담당 주치의는 급성신부전이 오면 '투석'만 했어도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백 교수의 사망진단서 시비는 '지식인은 권력이 싫어하는 진실을 말할 수 있나'란 문제를 성찰케 한다. 지식인은 전문 지식을 갖고 사회의 담론을 형성하고 주도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어떤 분야든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이다. 그는 지식인인가. 외견상 충분히 그렇다. 나이 50 중반에 최고 대학병원의 메이저과 과장이면 의사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간 것이다.

내면세계는 어떨까. 기자회견 말미에서 그는 말한다. "…의사를 천직으로 알고 지금까지 의료 현장에서 일해왔다. 가장 중요한 가치 기준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의료현장에서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는 의료행동 윤리다." 이 정도면 지식인으로 손색이 없지 않을까?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그 자신 인텔리겐치아(지식계층)였으면서도 정작 인텔리겐치아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이 권위주의 국가에서 억압받는 민중의 편에서 발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권력 앞에서 진실 말하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희생을 덕목으로 여긴 19세기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의 전통은 사라졌다. 특권과 지위 유지만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이들이 그는 싫었다.

지식인이라면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혹시 백 교수의 저런 모습은 누가 뭐래도 소신을 지키겠다는 것일까.

아니다. 소신을 지키는 데는 나름 조건이 있다. 그건 지조니 절개니 하는 거룩한 게 아니라 상식이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외인사라는 판단에는 심오한 분석이 필요한 게 아니다. 굳이 히포크라테스 선서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된다.

상식을 따르는 게 윤리이자 소신 지키는 것

 

 

인터뷰하는 오연상 의사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 그를 검안하고 물고문 가능성을 가장 처음 제기한 오연상(당시 32세)이란 젊은 의사가 있었다. 그는 4년 전 인권의학연구소와의 인터뷰에서 그 일을 회고하며 이런 말을 했다.

"윤리라는 게 배웠다고 그렇게 한다는 보장은 없거든요. 의사협회나 의사들 모임에 윤리 강령 혹은 선언들이 있어도 무용지물인 것과 비슷한 맥락이에요. 신경 쓰는 사람도 별로 없죠. 결국에는 각자가 어떤 식으로 사고하고 살아가는지의 문제가 되는 것 같네요."

나는 이 말이 윤리니 선언이니 하기보단 상식을 따르자는 얘기로 들린다.

2016-10-12 11:42:56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