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야당 분열', 긍정하기 위한 조건
갈라선 김대중(왼쪽)과 김영삼
그러나 이런 불길한 '데자뷰'가 지나친 비약이라고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첫째로, 지금은 대선 국면이 아니며 따라서 대선 후보 단일화를 운운하는 것은 성급하다. 변화무쌍한 우리 정치지형에서 앞으로 수많은 변수들이 작동할 여지가 있다.
둘째로, 따라서 당장은 내년 4월 13일 총선에 집중하는 게 순서다. 총선에서 얻는 성과에 따라 야당은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을 관철할 수도 있다. 이게 도입되면 '뼈아픈 단일화 협상 결렬' 같은 악몽의 재연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내년 총선에 대해서도 긍정적 신호가 보인다. 한겨레신문의 최근 총선 지지 정당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신당'을 꼽은 응답자는 새누리당 26.6%, 새정치연합 26.5%에 이어 16.4%였다. 리얼미터와 중앙일보 조사에서도 안철수 신당은 비슷한 지지를 얻었다.
안철수 의원의 지지도가 두 배 이상 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40%대이던 새누리당은 30%대 이하로 떨어졌다. 안철수 신당 출범이 새누리당 지지를 잠식할 것이란 예측을 가능케 한다. 안 의원은 탈당 기자회견에서 "새누리당 세력의 확장을 막고 새로운 정치로 국민들께 보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가운데)이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황주홍, 문병호, 김동철, 유성엽 의원(왼쪽부터) 등이 배석한 가운데 신당 창당 구상을 밝히고 있다. 강윤중 기자
새누리당 축소 초래할 수도
그는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던 2011년 9월에도 "나는 현 집권세력이 한국 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안 의원의 이런 일관된 '확장' 발언이 실제로 새정치연합보다는 새누리당의 '축소'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 하나는 정권 교체에 대한 안 의원의 굳은 의지다. 그는 21일 신당 창당을 선언하며 "국민이 원하는 정권 교체를 하겠다"고 재차 말했다. 정권 교체를 위해 분열한다는 건 이치에 닿지 않는 소리기는 하다. 그러나 정치에서나 인간사에서나 때로는 이런 역설도 성립할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남녀관계도 정 안 맞으면 힘겨운 동거를 유지하는 것보다 깨끗이 갈라서는 것도 방법이다.
조 국 교수는 안 의원 탈당 후 "안철수는 '중도'의 길로 가고, 문재인은 '진보'의 길로 가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이념 지향을 감안한 적절한 조언이라고 본다. 박근혜 정권에 대해서는 진보는커녕 보수나 중도의 타이틀을 붙이기조차 난감한 정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군복에 가스통 들고 설치는 민간인들을 방관하고 재정 지원하는 정권, 아니면 시대착오적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정권이다. 조 교수는 또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이) 쿨하게 갈라서라"고 했다. "상대에 대한 감정, 먼저 지우고 풀어라. 상대를 비방한다고 자기가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지지자들도 말을 아끼자. 이제 자기 실력을 입증하여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라"고도 충고했다.
문제는 그 '쿨하게' 헤어지는 방식과 과정이다.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향후 이 분열이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 전기로 작동하는 것을 막으려는 수많은 훼방꾼들이 있다.
공조·연대할 여지 남겨놓아야
분열을 고착화해 이득을 얻으려는 세력은 외부는 물론 내부에도 있다. 내년 총선에서 지역별 야권 후보 단일화 같은 '선거연합'도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언제든 공조·연대할 여지를 남겨놓아야 한다. 그런데 안 의원은 신당 창당을 선언하며 "혁신을 거부한 세력과의 통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총선 연대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쌓인 감정적 앙금 등이 만만치 않은 탓이리라. 하지만 이게 정치적 수사를 넘어 독선적 판단으로 굳으면 곤란하다.
전선이 새누리와 새정치연합 양쪽으로 나뉘면 어려워진다. 만약 야권의 분열이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판명난다면 정권교체의 꿈은 멀어진다. 소탐대실도 그런 소탐대실이 없다. 열린 마음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야당 분열이 긍정될 수 있는 중요 조건이다.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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