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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국정화 주장, 논리가 제로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정부·여당의 논리가 너무 허술하다. 이런 논리로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건 정말 무리다. 이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주장이 있다.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란 논리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주 청와대 5자회동에서 "집필진 구성도 안 됐고 단 한 페이지도 쓰여지지 않은 교과서를 친일이니 독재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도 국감에서 "새로운 역사교과서의 집필진도 구성되지 않았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두고 더 이상 왜곡과 혼란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아직 안 나온 물건을 가지고 왜들 야단이냐. 기다려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교과서는 이미 나온 거나 다름없다. 2008년 교과서포럼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발간했다.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 대통령은 출판기념회에 가서 축사까지 하며 격려했다.



2008년 5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뉴라이트 계열의 교과서포럼이 만든 대안교과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대안교과서는 식민지근대화론을 토대로 일제강점기를 기술하고, 5·16 쿠데타를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으로 미화했다. 또 2013년에는 한국현대사학회 인사들이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냈으나 역시 친일·독재 미화 논란에 휩싸이며 채택률 0%대를 기록했다.

이 교과서들이 1년 후 나올 국정교과서의 원형이 될 것은 분명하다. 현 대통령이 호의를 보낸 게 강력한 지침으로 작용할 것이므로.

따라서 '집필되지도 않은 교과서'란 이들의 전제는 논리적 오류다. '기다려 보라'는 결론도 당연히 오류다. 민주사회에서는 어떤 정책이건 법안이건 논의과정에 찬반을 표시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이건 역사 기술에 관한 문제 아닌가. 한데 국론 분열은 안된다며 그냥 가만히 기다리라고 한다. 세월호 아이들처럼?

"적화통일 대비한 교육" 극언까지

그 다음 나오는 논리들도 좌충우돌이다. 박 대통령은 5자회동에서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려는 노력이 정치적 문제로 변질되는 점이 안타깝다"고, 시정연설에선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치화·정쟁화는 그들이 솔선하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이 성명에서 지적한 것처럼 "국정화 강행의 본질은 교과서 서술의 문제도 아니고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문제도 아니며, 집권층 일각의 정치적 고려가 앞선 무리수일 뿐"인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근거 없이 "검인정 교과서 집필진의 90% 이상이 좌파 학자들"이란 강변을 반복한다.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현행 검인정 교과서를 '좌파교과서'라고 부르며 "적화통일에 대비한 교육"이라고 극언했다. 서청원 최고의원은 여기서 더 나가 북한이 대남선전 매체를 동원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비난하는 것과 관련해 친북단체가 지령을 받았는지 사법당국이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논리로 이른바 패배주의 극복론이 있다. 박 대통령은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될 나라이고 북한이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서술돼 있다. 이렇게 패배주의를 가르쳐서 되겠나"라고 했다.

최근 '올바른 교과서를 지지하는 지식인'이란 단체는 "기존 국사 교과서는 … 삶 자체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도록 만듦으로써 청년층 자살 및 정신질환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 한국사교과서가 좌편향됐다면

이보다는 합리적 보수로 평가되는 한신대 윤평중 교수의 이런 논리가 설득력 있다.

"정부·여당의 논리라면 지금 20~30대가 좌편향된 국사교과서로 공부해 10대를 보낸 세대다. 만약 국사교과서가 좌편향됐다면, 그 젊은층들이 자연스럽게 좌편향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지난번 DMZ 목함지뢰 사건 때도 그렇고, 천안함 폭침 때도 그렇고, 북한에 대한 청년층의 반응은 매우 비판적이다. 3대 세습을 비롯해서 북한 체제의 본질에 대해 비판적이며 군 자원입대도 늘어나고 있다."

가능성은 적지만 이런 국정화의 비논리성과 그로 인한 국론분열이 거대한 정치적 기획과 전략의 소산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큰 실수를 저지르는 거다. 그럴수록 민심은 멀어질 것이므로. 문제는 그걸 모르는 거다.



2015-10-30 11:51:0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