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팬클럽과 정치적 지지의 차이

1999년 1월 1일자 경향신문 기사다. "31일 새벽 1시30분쯤 서울 여의도 KBS 부근에서 KBS 가요대상을 방청하고 돌아가던 인기댄스 그룹 HOT와 젝스키스 팬클럽 회원 10여명이 패싸움을 벌였다…."

그 결과 HOT 팬 이모양(15)이 병원으로 실려갔으며, 젝스키스 팬 배모양(18) 등 2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싸움은 두 그룹의 팬들이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가 더 낫다며 입씨름을 벌이다 일어났다.

그땐 이런 일이 흔했다. 오죽하면 사생팬이란 말도 생겨났다. 특정 연예인의 사생활을 죽기 살기로 쫓아다니는 극성팬을 말한다. 소녀 팬들이 이러는 건 그 가수의 외모나 춤 등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열정을 지배하는 건 맹목성이라고 본다. 일단 '필'이 꽂히면서 모든 게 무조건 좋아지는 거다.

이 얘기를 꺼낸 건 정치에서도 팬클럽 비슷한 단순논리가 횡행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이성 논리 상식적 판단은 간단히 무시되고 만다. 정치에 연예활동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건 사실이다. 가수들이 팬클럽을 신경 쓰듯 정치인은 유권자를 의식한다. 의원들의 의정활동이 무대 위의 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정치인들에게도 팬클럽 비슷한 게 있다. 그 첫 사례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였다.


1990년대 말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HOT 콘서트

 

그러나 정치적 지지와 팬클럽은 같은 게 될 수 없다. 둘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중대한 차이가 있고 또 있어야 한다. 바로 그 맹목성, 무조건성에 있어서다. 팬클럽이 맹목적인 거야 뭐라 할 게 못되지만 정치적 지지가 그런 건 경우에 따라 굉장히 위험하다. 정치가 우리의 삶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하기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특정 정치인을 원론적으로 지지하더라도 각론에선 반대의견도 표출하는 게 정상이다.

참여연대의 한미FTA 반대운동

이런 사례가 있다. 노무현 집권 때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에 대해 적지 않은 기존의 노무현 지지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세간에서 이른바 '노빠'로 분류한 인사들도 그랬다.

참여연대는 한·미 FTA가 불평등한 협정이며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는 이유로 적극적 반대운동을 폈다. 이 단체는 정치적으로 독립된 활동을 표방하지만 참여와 인권이 보장되는 민주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노무현정부와 가치를 공유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만큼은 반대를 분명히 했다. 참여정부 초기 참모였던 정태인씨나 이정우 교수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요컨대 보수·진보라는 진영논리를 넘어 정치적 소신에 따라 반대를 밝힌 것이다.

이들이 단순한 진영논리에 따라 무조건, 맹목적으로 찬성하지 않은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타계한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자르고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사로 꼽혔다.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 그는 2012년 총선불출마를 선언할 당시 "중도 진보주의자를 포함해 진보의 범주를 넓혀달라"며 "선거는 중도성향 유권자들의 향배가 당락을 결정한다"고 당부한 일도 있다.

필자에게는 이런 사례들이 까마득히 먼 과거의 일로만 여겨진다. 그만큼 시대역행적 권위주의적 데자뷰가 일상화한 시절이다. 정치현실은 박근혜 대통령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팬클럽 맹목적 열광과는 달라야

이 정권에서 그의 말을 자르고 다른 생각을 말한다는 건 상상조차 어렵게 됐다. 여당 속 야당이란 것도 옛말이다. 그나마 보수진영에서 재벌개혁과 법인세 인상 같은 개혁적 의제를 공론화했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마저 쫓겨났다. 이제 집권세력 안에서 박근혜와 다른 소신을 당당히 밝힐 용기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가수 한영애의 노랫말대로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소"를 외치고 싶다.

지난주 박 대통령은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과 동떨어진 대국민담화를 24분 동안 일방적으로 늘어놓았다. 사과는 없이 '대국민 훈시'만 했다. 암담한 것은 이대로는 그런 행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기대할 건 야당의 목소리가 아니라 '박빠'들의 정치적 자각뿐인 듯하다. 정치적 지지란 건 팬클럽의 맹목적 열광과는 다른 것이라는 자각 말이다.

김철웅 전 경향신문 논설실장

2015-08-12 12:25:13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