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에 대한 의원직 제명이었다. 1979년 9월16일자 뉴욕타임스에 김 총재의 기자회견이 실렸다. 회견에는 “미국이 공개적이고 직접적 압력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을 제어해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때는 YH무역 노동자들이 신민당사에 들어와 부당 폐업 반대 농성을 벌이다 경찰의 폭력적 진압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씨가 추락사하는 사건이 벌어진 엄혹한 유신 말기였다.

9월22일 공화당과 유정회는 회견 내용을 문제 삼아 소속 국회의원 160명 전원 명의로 징계동의안을 제출했다. 징계 종류는 제명으로 정했다. 징계 사유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신분을 일탈하여 국헌을 위배하고 국가안위와 국리민복을 현저히 저해하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 반국가적 언동을 함으로써 스스로 주권을 모독하여 국회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것이었다.

 

 

1979년 10월 4일 국회에서 공화당과 유정회는 신민당 김영삼 총재에 대한 제명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사진은 당시 이를 보도한 경향신문 1면이다.

 

10월4일 제명안은 국회 별실에서 여당 단독으로 날치기 통과됐다. 무술경위들을 출동시켜 본회의장을 점거 중인 신민당 의원들 진입을 차단한 상태로였다. 159명 참석에 159명 찬성이었다. 이로써 김영삼은 총재직과 의원직에서 제명되고 가택 연금되었다.

10월16일과 10월17일 부산에서는 김영삼에 대한 정치탄압 중단과 유신정권 타도 등을 외치는 시위가 벌어졌다. 18일과 19일에는 마산과 창원으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부마사태였다. 이어 10·26이 터졌다.

박정희가 암살당한 것은 민주주의를 버리고 폭압적 유신독재를 고집한 것에 대한 응보다. 흔치 않게도 그 2세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건 우리의 ‘특별한 역사’다. 누군가 2세 대통령에게 부친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충고(또는 경고)했다. 이게 인간적으로 예의에 어긋난 것일 수는 있다. 정신적 상처를 건드린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만의 특별한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란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분기탱천하여 징계에 부산하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우리가 가끔씩 정치·사회 현상에서 데자뷰를 경험하는 건 이런 원리 때문인가. 서글픈 데자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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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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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laton 2019.03.14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로부터 반세기 가까운 40년이나 지난 대명천지에 그런 일을 자행하는 망할민국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이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한답니다. 40년 전 안팎으로 엄혹한 시절~ 박정희를 독재자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