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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송전탑과 물신주의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란 속담이 있다. 문주란·남진이 부른 히트곡에도 ‘사람 나고 돈 났지’가 있다. 속담이나 가요가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주장하고 나서는 건 어째서일까. 인간사에선 종종 둘의 관계가 뒤집어져 돈이 사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물신주의(物神主義)라고도 한다. 물질을 신처럼 숭배한다는 뜻이다. 배금주의, 황금만능주의도 같은 말이다. 이 현대종교에서 돈과 사람의 처지는 간단히 역전된다. 이 세계에서는 사람을 위해 생겨난 물질·돈이 주인 행세를 한다. 사람은 거기 종속된다. 따라서 인간의 고결한 정신·영혼 같은 건 중요한 고려 대상이 못된다.

물신주의의 필연적 결과는 소외다. 물질이 인간으로부터 독립해 거꾸로 인간을 지배함으로써 인간은 소외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자기가 생산한 물건에 대해 주인의 지위를 갖지 못하고 소외된다고 했다. 이를 노동생산물로부터의 소외라고 불렀다. 마르크스는 소외의 근본원인을 사적 소유에서 찾았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으로부터의 인간의 소외를 초래한다고 보았다.

 

 

지난달 28일 밀양에서 출발해 14일 만에 서울까지 걸어온 ‘밀양주민 국토종단 도보순례단’과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 12일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 앞에서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엊그제 국무조정실이 내놓은 ‘지난 9월 현재 갈등과제 목록’은 밀양 송전탑 등 40개 사회적 갈등을 ‘가치’보다 ‘이익’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물신주의와 소외에 관한 마르크스의 생각이 대체로 옳았음을 보여주는 자료 같다. 밀양 송전탑의 경우 주민들이 건강과 거주권, 환경 훼손을 문제삼는데도 정부는 이를 보상 문제로 단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정부의 인식은 주민들이 ‘보상이 적어 떼를 쓰고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문제의 본질과 굉장히 동떨어진 생각이다. 보상에 합의하지 않은 밀양의 송전탑 경과지 마을들은 더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인체 안전 논란 등을 고려해 공사를 중단하고 사회적 공론화 기구를 구성하자고 한다. 노인들은 “살던 곳에서 그저 계속 살고 싶다”고 애원한다.

그럼에도 이를 돈 문제로, 님비현상으로 모는 이유는 뭘까. 역시 현대인에게 보편적인 물신주의의 영향인 듯하다. 정부 관계자들 스스로 물신주의의 함정에 빠져 밀양 갈등의 본질을 보상 문제로 왜곡하고 있다. 이로써 힘없고 연로한 주민들을 주류 사회로부터 소외시키고 있다. 혹시 이들의 조급증도 돈 때문인가.


김철웅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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