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미국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른 ‘더 복서’는 권투선수의 애환을 그린 명곡이다. 가사는 사랑이나 낭만 타령과는 거리가 멀다. 가난한 소년이 집과 가족을 떠나 뉴욕에 왔다. 빈민가에서 막노동 일자리라도 찾으려 했지만 아무도 일을 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그가 선택한 길이 복서다. 노래 마지막에서 링 위에 오른 복서는 절규한다. “상처투성이 속에 분노와 수치심에 휩싸여 ‘난 이제 떠날 거야, 이제 떠날 거야’라고 외쳐보지만, 싸워야 할 상대는 저기 그대로 남아 있어요….”
복서의 고뇌를 잘도 그렸다. 곡을 쓴 폴 사이먼은 어떻게 저리 권투선수의 심리를 꿰뚫고 있을까 할 정도다. 실제로 복서의 죽음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설이 있다. 1962년 3월 쿠바 태생의 미국 복서 베니 페렛이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도전자 에밀 그리피스를 상대로 세계 웰터급 타이틀 방어전을 치렀다. 페렛은 12라운드에 그리피스의 속사포 같은 공격을 받아 의식을 잃었고 열흘 뒤 사망했다. 전국에 TV로 중계된 첫 링 위의 죽음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권투를 스포츠로 간주할 수 있느냐는 논쟁이 불붙었다. 이 사건이 6년 뒤 나온 ‘더 복서’의 모티브가 됐을 법하다. 그만큼 노래엔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뿐인 복서들의 고달픈 삶이 절절히 배어 있다.
복서가 된 배우. 고정관념을 깬 이시영의 파격이 아름답다.
권투는 뇌에 충격을 가하는 운동이다. 정도만 다를 뿐 헤드가드를 쓰고 하는 아마추어 복싱도 본질은 프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학교 때 글러브를 끼워본 적이 있는데 그때 받은 얼얼한 충격이 지금도 기억난다. 요즘은 다이어트를 위해 여성들도 복싱을 많이 한다지만, 치고받아야 하는 사각의 링은 또 다른 처절한 공간이다. 사람들이 복싱에 열광하는 건 본능적 폭력성을 자극하고 대리 만족시키는 합법적 기제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전국체전 복싱 플라이급 8강전에서 져 탈락한 배우 복서 이시영이 결과에 상관없이 복싱을 열심히 하겠다고 한다. 배우라고 권투하지 말란 법 없지만 얼굴이 생명인 여배우로선 좀 엉뚱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전통적 복서의 헝그리 정신도 필요 없다. ‘더 복서’의 주인공처럼 싫어도 링에 올라가야 하는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4년째 하는 걸 보면 상당히 진지한 것 같다. 운동 자체에 의미를 둔 건지, 무슨 성과를 바라는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파격이 보기 좋다.
사이먼&가펑클 더 박서
https://www.youtube.com/watch?v=l3LFML_px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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