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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아버지 지우기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대표(45)에게 든든한 정치적 자산은 부친 장 마리 르펜(85)이다. 세 자매의 막내인 그가 아버지가 이끄는 국민전선에 입당한 것은 18세 때였다. 세 딸은 학교에서 파파가 ‘파시스트’란 놀림도 받았고 마린이 8살 때는 가족이 잠자다 폭탄공격을 당한 적도 있다.

마린은 2011년 초 아버지를 이어 당 대표가 됐다. 지난해 대선 1차투표에서 18%를 얻어 3위를 기록했다. 국민전선은 결선투표가 있는 프랑스 선거제도 특성 탓에 지난해 총선에선 2석을 얻는데 그쳤지만 지지율에서는 양대 정당을 위협해 왔다. 그러더니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기어이 1위를 차지했다. 주간 누벨옵세르바퇴르가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24%를 얻어 집권 사회당(19%)과 제1야당 대중운동연합(22%)을 제쳤다.

 

 

                     연설하는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


마린 대표가 부친의 후광을 한껏 입었으되 거기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인 것이 국민전선의 약진에 주효했다. 이를테면 아버지의 반유대주의와 과감히 결별했다. 부친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했지만 마린은 “홀로코스트는 야만의 극치”라며 차별화를 꾀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극우파’를 부각시키려 애썼고, 아예 국민전선이 극우정당임을 부인했다. 단순화한다면 아버지의 이미지를 탈색하고 그 유산을 청산한 게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때는 ‘탈색’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것 같았다. 당 비상대책위원장이던 지난해 2월 “저와 새누리당은 잘못된 과거와는 깨끗이 단절하고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 등과의 거리두기로 받아들여졌다. 재창당을 뛰어넘어 뼛속까지 쇄신하겠다고도 했다. 복지 이슈와 경제민주화 등 진보적 의제도 야당보다 먼저 던졌다.

당선 뒤 그 탈색작업은 멈추었다. 그가 집권하자 극우들은 준동 수준의 행태를 보인다. 곳곳에서 종북 척결의 목소리가 낭자하다. 경제민주화도 기초연금도 행방이 묘연하다. 아버지 시절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검사 출신이 비서실장에 기용됐다. 그는 ‘승지’를 자처한다. 이런 것들은 부친의 유산을 결코 부정해선 안될 신성한 무엇이라고 믿는 박 대통령의 생각과 관련된 듯하다. 이 대목에서 아버지의 유산을 청산하려는 마린의 정치행보가 종국에는 ‘시늉’인 것으로 판명날지 아닐지 궁금해진다.



김철웅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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