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1469~1527)의 <군주>는 26개 장에 걸쳐 통치기술을 설파한다. 18장 ‘군주는 어디까지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에선 이렇게 가르친다.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그에게 불리할 때 그리고 약속을 맺은 이유가 소멸되었을 때,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며 또 지켜서도 안됩니다. … 군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그럴듯한 이유를 항상 둘러댈 수 있습니다.” 19장 ‘경멸과 미움은 어떻게 피해야 하는가’에선 이런 얘길 한다. “군주는 미움을 받는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합니다.”

<군주>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신생 군주를 대상으로 쓴 것이지만 그 통찰력이 현실정치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게 긴 생명력의 비결일 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세종시 원안 추진 약속을 뒤집었을 때 마키아벨리가 생각났다. 이 ‘가르침’에 매우 충실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국가백년대계니 국가경쟁력이니 통일 이후 대비니 하며 약속 불이행의 이유를 둘러댄 것이나, 정운찬 총리를 비판여론 완충용으로 내세운 것이 그렇다.

 

 

                               마키아벨리의 초상화


마키아벨리의 조언은 현 정권에도 솔깃한 것일 수 있다. 기초연금 공약이 후퇴한 데 대해 세계경제 침체니 뭐니 하며, 끝끝내 공약 파기나 공약 후퇴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다. 진영 전 복지부 장관이 정권 차원의 맹비난을 받는 것도 주무 장관이 군주가 받을 비판을 떠안지 않고 달아난 ‘괘씸죄’가 크지 않았을까. 대놓고는 말 못해도.

그러나 <군주>를 권모술수와 처세술의 독본으로만 보는 것은 단편적 이해의 결과다. 가령 책 19장에는 “군주가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탐욕적이어서 신민들의 재산과 부녀자를 강탈하는 것”이란 내용도 들어 있다. 고약한 문제는 마키아벨리즘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교활한 처신을 해놓고 마키아벨리즘적 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올해가 마키아벨리가 <군주>를 탈고한 지 500주년이다. 실제 책은 마키아벨리 사후인 1532년에 나왔지만 마키아벨리즘 5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오늘 서울 코엑스에선 ‘2013년 한국정치, 왜 마키아벨리인가’란 주제의 학술대회도 열린다. 이런 행사가 마키아벨리즘=모략이란 일반의 통념을 깨뜨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철웅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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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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