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론’은 사전에 없는 말이다. 그런데도 많이들 쓴다. 누가 쓰나. 주로 좌파 또는 ‘빨갱이’로 몰려 피해를 입는 쪽이 비판적으로 쓴다. ‘가해자’ 쪽에서 자기 주장을 색깔론으로 규정하는 법은 없다. 그 점에서 색깔론이란 말은 피해자, 조금 더 나가 패자의 언어다.

요즘 자주 쓰이는 ‘대선 불복’은 반대로 이긴 쪽, 승자의 언어다. 용례를 보면 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어제 문재인 의원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등과 관련해 대선 불공정 및 박근혜 대통령 책임론을 제기한 데 대해 “역대로 대선 불복 사례가 없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같은 날 최경환 원내대표도 “사실상 대선 불복 성명을 발표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대선 불복을 자주 입에 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게 “선거 결과에 승복 안 하고 민의의 선택에 맞서겠다는 거냐”고 야당을 으르는 데 그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24일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등과 관련해 대선불공정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역대로 대선 불복 사례가 없다"며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 당선에 불복해 당선무효 소송과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대선 불복’을 여당 측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게 된 데는 야당이 방조한 측면도 있다. 그 말 사용이 금기시된 것과 관련 있다. 어제 문 의원 측 관계자가 “문 의원이 대선 불복이 아니라는 것은 지금까지 네댓 번 얘기했다. 대선 불복이 아니라 대선 불법인 것”이라고 말한 것도 그렇다. 결과에 불복한다고 대놓고 말 못해온 분위기가 읽힌다.

이로써 ‘대선 불복’은 승자의 언어로 고착됐다. 앞으로도 “불복하겠다는 거냐”는 이들의 노래는 계속될 것 같다. 그러나 국가기관 개입과 은폐 혐의·사실이 속속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그러고만 있는 건 문제다. 좋은 유행가도 한 노래만 줄창 들으면 물린다. 가수가 그러면 “부를 노래가 그것밖에 없나”라는 말을 듣는다. 대선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공정하게 치러졌다는 증거가 나오는데도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하다간 집권당의 상황 대처능력을 의심받게 된다.

색깔론엔 논리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칼자루를 쥔 권력이 “너 빨갱이, 종북이지” 하면 증거가 불충분해도 게임 끝이다. 지금 새누리당의 대선불복론도 그런 비논리를 향하고 있다. 계속 그러는 건 사유의 능력이 없는 단세포성만 드러낸다. 민의가 왜곡됐을 가능성에도 승복만 강요하는 모습이라면 “어찌됐든 이겼으면 장땡이지”란 심보와 다를 게 없다. 그것은 ‘대선 불복’이 승자를 넘어 가해자의 언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피해자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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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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