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반복된다는 게 맞긴 맞나 보다. 1994년 7월18일 김영삼 대통령과 전국 14개 대학 총장의 청와대 오찬에서 박홍 서강대 총장은 “주사파가 생각보다 대학 깊숙이 침투해 있으며, 주사파 학생 뒤에는 사노맹이 있고, 사노맹 뒤에는 사로청, 그리고 사로청 뒤에는 김정일이 있다”는 충격적 발언을 했다. “주사파들이 대학 안에 테러 조직 등 무서운 조직을 만들어 놓고 있다”고도 했다. 이날 이후 ‘주사파 소동’이 시작됐다. 그는 주사파 5만명이 학계와 정당, 언론계, 종교계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등 뉴스를 쏟아냈다.

엊그제 교학사 고교 한국사 집필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가 충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새누리당 ‘근현대사 역사교실’이란 모임에 나와서였다. 그는 “현재 좌파 진영이 교육계와 언론계의 70%, 예술계의 80%, 출판계의 90%, 학계의 60%, 연예계의 70%를 각각 장악하고 있다. 이 부분을 자각해서 대처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저쪽(좌파)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큰 것이 우리 사회”라고 주장했다. 분야별로 좌파가 장악한 정도를 수치로 제시한 게 19년 전 박 총장 발언보다 돋보였다.

 

                                      박홍                             이명희

 

이런 일을 당하면 궁금증도 반복된다. 역사는 정말로 반복되는 걸까. 왜 그럴까.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은 “어떤 사건도 단독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과거에, 그것도 자주 일어난 것의 반복일 뿐”이란 생각을 신봉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역사가 반복되는 게 아니라 운(韻)을 맞추는 것”이라고 문학가다운 해석을 했다.

일찍이 마르크스가 프랑스 혁명 후 벌어진 역사 반복 현상을 관찰하고 쓴 책이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한다. “헤겔의 말대로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1799년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집권해 황제에 오른 것을 비극으로, 1851년 총기가 한참 떨어지는 그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가 삼촌을 흉내 내 또 다른 쿠데타로 즉위한 것을 코미디 같은 일로 인식한 것이다.

19년 전 박 총장이나 이 교수나 의도하는 게 매카시즘·색깔론 유포, 공안정국 조성인 건 분명해 보인다. 주장만 있고 증거는 없다는 점도 그렇다. 그런데 교과서를 잘못 썼다는 비판에 대뜸 색깔론을 꺼낸 두번째 경우는 헛웃음부터 나온다. 마르크스의 생각, 역시 탁견인 것 같다.


김철웅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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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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