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분자생물학자 후쿠오카 신이치가 쓴 <동적 평형>은 ‘왜 어른이 되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일까’란 의문을 재미있게 설명한다. 물리적 시간 1년은 세 살 때나 서른 살 때나 같은 속도로 흘러가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신진대사 속도가 늦어진다. 즉 몸속 ‘체내시계’가 서서히 느려진다는 뜻이다. “반년 정도 지난 줄 알았는데 벌써 1년이 지났냐”며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5년이 지나가고 새 정권이 들어섰다. 언제나 끝나나 했는데 지내고 보니 그야말로 쏜살이다. 내 나이 50대 후반이니, 후쿠오카 교수의 이론이 맞긴 맞나보다. 5년 전 이명박 정권 출범 때 ‘쏠림의 시대’란 칼럼을 쓴 게 엊그제 같으니까.
지난 정권을 규정하는 핵심어, 열쇳말은 속도전 정권이 적당할 것 같다. 4대강 사업이든 선진화든 토목공사 공기 단축하듯 밀어붙였다. 민주주의도 맹렬한 속도로 후퇴했다. 양극화도 극심해졌다. 참고로 나는 행정부라는 어감이 강한 정부보다는 정권이란 말을 쓰겠다. 그게 우리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의 집권세력을 총칭하는 데 적합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몇 개 정권들을 비판적으로 압축 표현하는 말들을 생각해 본다. 김영삼 정권은 IMF 초래, 김대중 정권은 IMF 설거지, 노무현 정권은 한·미 FTA….
새로 출발한 박근혜 정권은 어떤 정권으로 부를까. 갓 시작한 정권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게 시기상조이기는 하다. 회고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특기할 것은 박 대통령이 선거전에서 이명박 정권과 거리두기 전략을 쓴 것이 주효했다는 점이다. 복지 이슈와 경제민주화 등 진보적 의제도 먼저 던졌다.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을 지낸 이상돈 교수는 ‘창작과 비평’ 봄호에 실린 ‘2012년과 2013년’이란 주제의 대화에서 “박근혜 비대위의 쇄신, 경제민주화, 복지 같은 것도 ‘박근혜판 제3의 길’이라고 부를 수 있다”며 새누리당의 총선·대선 승리 요인을 분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시종일관 싸늘하고 굳은 표정으로 야당에 정부조직법 개정안 양보를 압박했다.
그럼에도 필자는 박근혜 정권을 ‘유전자 정권’으로 규정하려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전자가 이 정권의 성격과 정체성을 두고두고 규정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정권’이란 말엔 단순히 닮았다는 것 이상의 함의가 있다. 2세 정권은 한국정치 사상 초유의 일이다. 흔한 재벌세습과는 차원이 다르다.
은유로서의 유전자는 정치분석에 자주 동원돼왔다. 김재홍 교수(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는 지난해 쓴 <박정희 유전자>에서 한국사회에 뿌리박힌 박정희 체제의 흔적들을 ‘박정희 유전자’로 명명했다. 그 대표적인 것들로 재벌 중심 경제체제, 경제성장 지상주의, 권위주의, 군사주의, 지역주의, 색깔론 등이 있다. 그런데 박근혜의 집권은 그것도 모자라 박정희의 생물학적 유전자가 정권을 넘어 전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 7대를 건너뛴 격세유전이랄까.
사전적으로 유전이란 어버이의 성격, 체질, 형상 따위 형질이 자손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그런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인자가 유전자다. 유전학이 발전하면서 사람의 정치적 성향도 유전자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건 자연의 섭리이자 축복이다. 장삼이사에게 가족공동체만큼 중요한 게 없다. 하지만 국가지도자는 그 이상을 헤아려야 한다. 물려받을 건 받되 버릴 건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아버지와 딸의 혈연논리에 매몰된다면 지도자 자격이 없다. 부모의 단점, 이를테면 독재의 유전자 같은 것이 물려져 2세에게 발현된다면 살떨리는 일이 될 수 있음이다.
대통령직인수위가 박 대통령 취임 나흘 전인 2월21일 발표한 ‘박근혜 정부 5대 국정목표, 21개 국정전략, 140개 국정과제’에서는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튿날 경향신문 ‘경제민주화 후퇴는 국민과의 약속위반이다’란 사설에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 “시대착오적 추억투표에 대한 대가가 5년간 펼쳐질지니. 국민 수준에 맞는 리더를 갖게 된 것.” 짧은 글에 진한 자괴감, 배반감이 묻어 있다. 난치성 희귀질환인 다발성경화증을 5년째 앓고 있는 안정숙씨의 남편 김재식씨(53)는 박 당선인이 4대 중증질환 국가지원 약속을 어겼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서민의 정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절망을 접할 때 다시 설명력을 얻는 것이 유전자론이다. 박근혜의 승리는 이명박과 그 ‘거대한 뿌리’ 박정희를 지워낸 데 힘입은 바 크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니 도로 박정희다. 역시 유전자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문제의 근본을 박정희의 유전자에서 찾게 될 때 배반감은 증폭되고 해법은 막막해진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체제 개혁인데 그 체제를 만든 장본인이 박정희다.
지금 무의식 속에 자리잡은 원체험마냥 우리를 불안케 하는 것의 정체는 박정희의 그림자인 듯하다. 박근혜 정권이 선거에서 나타난 ‘유권자’의 뜻이 아니라 ‘유전자’에 휘둘릴 공산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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