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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소련이 무너진 사연

벌써 20여년 전 일이다. 1991년 8월19일 국제부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오니 외신 텔레타이프로 ‘불레틴’(급전)이 쏟아지고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 제1보는 “고르바초프 유고”였다.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비는 휴가 중인 크림반도에서 연금됐다. 모스크바 시내에 탱크가 배치됐다. 이들은 개혁 개방을 거부하고 권력 이양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저항했고 쿠데타는 ‘3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쿠데타를 계기로 공산당은 급속히 세력이 약화되고 연방 붕괴가 숨가쁘게 진행됐다. 1991년 12월8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지도자들은 소련 해체와 독립국가연합(CIS) 창설에 합의했다. 12월25일 마침내 고르바초프는 연방 해체를 발표했다.

 

 

1991년 8월 19일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사진 가운데)은 의사당 앞에 진주한 탱크 위에 올라가 쿠데타를 규탄하는 연설을 했다. 보수파 쿠데타는 소련방 급속 해체의 계기가 되었지만 소련 붕괴 자체는 수많은 모순들이 지속적으로 누적된 결과였다. 미소간 과도한 군비경쟁 같은 부분적 요인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방해한다.



그러나 쿠데타는 소련 붕괴의 서막이었을 뿐 그 원인은 아니다. 소련은 어쩌다 망하게 됐나. 많은 분석들의 주조는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의 대결에서 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총론에서 그럴 뿐 심층적 분석은 지금도 필요하며 진행형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1989)에서 공산주의의 붕괴는 자본주의가 최후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의미라며 역사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자본주의가 결코 궁극적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목격하고 있다.

소련 출신 귀화자 박노자 교수는 레디앙에 연재한 칼럼에서 “노후·의료·교육이 보장됐던 소련에서의 삶은, 오늘날 남한에서의 삶보다 백 배, 천 배 더 ‘인간적’이었다”고 옹호한다. 그러면서 “당 엘리트의 철저한 비민주성, 다수 인민으로부터의 격리 등이 소련식 체제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진단했다. “현실 사회주의가 민주적이었다면 망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3일 북한정권 붕괴론을 언급하며 “구 소련이 핵무기가 없어서 무너진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 대해 국제적 고립과 국력 소모로 붕괴를 자초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맥락이었지만, 구 소련과 비교한 건 좀 뜬금없다. 소련 붕괴는 그야말로 수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건만, 소련이 핵무기 때문에 붕괴했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말이라고 본다. 단선적 분석은 명쾌함이 미덕이지만 자칫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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