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여행가, 긴급구호 활동가 한비야는 한마디로 세계인이다. 어려서부터 세계지도 보는 걸 좋아했다지만 언어도 핏줄도 다른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끝없이 소통하며 살아온 그의 삶 자체가 코즈모폴리턴적이다. 당연히 국가와 민족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사고의 소유자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 민족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중국견문록>(2001)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외국에서 낯선 사람끼리 만나면 맨 처음 물어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름일까? 천만에. 바로 어느 나라 사람이냐다. 국제회의에서 모르는 참가자들끼리 만날 때에도 명찰에 써 있는 국적이 이름보다 훨씬 궁금하다.” 그는 국적을 알면 공통화제를 찾기 쉽다며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나를 확인시키는 첫 번째 창은 한비야가 아니라 ‘한국인’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책을 좀 길게 소개한 까닭이 있다. 긴 세월 ‘바람의 딸’로 살아온 체험담 속에 인간 정체성의 본질 문제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이란 뭔가. 그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무엇이라고 답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겐 신앙이 목숨보다 소중한 정체성일 수 있다. “십수년간 돌아다니다 보니 나도 애국에 대해 일가견이 생겼다”는 한비야는 “내가 한국사람임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이 바로 세계시민의 일원이 되는 지름길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중국적 논란을 빚고 있는 김종훈 미래창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19일 서울 세종로 광화문빌딩에 마련한 임시 집무실에서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박민규 기자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국적 문제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는 장관 지명 사흘 전 부랴부랴 한국 국적을 취득함으로써 현재 이중국적자 신분이다. 옹호론의 요지는 그가 제기되는 단점들을 덮을 수 있는 출중한 능력이 기대된다는 것 같다. 반대론은 그의 국무위원 임명은 국가안보 분야 등 임용제한을 규정한 국가공무원법에 저촉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것은 앞서 말한 정체성 문제라고 본다. 그는 30년 이상 미국인으로 살아온 사실상 뼛속까지 미국인이다. 미주한인총연합회는 이중국적 시비 자체가 “시대에 역행하는 저급한 인식”이라며 정치적 유·불리 계산을 비판했다고 한다. 하지만 장관의 정체성 문제는 시대 역행 여하와 관계 없이 중대한 것이고, 정치적 셈법의 문제도 될 수 없다.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김 후보자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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