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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새희망홀씨

가수 진미령의 ‘하얀 민들레’란 노래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슬픈 노래를 경쾌한 리듬에 맞춰 잘도 불렀다. 왜 슬프냐 하면 이런 가사 때문이다. “나 어릴 땐 철부지로 자랐지만/ 지금은 알아요 떠나는 것을/ 엄마 품이 아무리 따뜻하지만/ 때가 되면 떠나요 할 수 없어요/ 안녕 안녕 안녕 손을 흔들며/ 두둥실 두둥실 떠나요/ 민들레 민들레처럼/ 돌아오지 않아요 민들레처럼.” 슬픈 노래를 웃으며 부르는 것은 일종의 테크닉이다. 민들레 홀씨처럼 ‘때가 되면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운명을 웃으며 노래함으로써 우는 것보다 더 절묘한 콘트라스트가 이뤄진다.

내친김에 민들레 노래 하나 더. 박미경은 ‘민들레 홀씨 되어’란 노래를 불렀다. 화자는 강둑에 홀로 앉아 임을 회상한다.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 훨 네 곁으로 간다.” 이 노래에서 홀씨는 홀로 번식이 가능한 씨앗이란 뜻이다. 그런데 엄밀하게 민들레 씨앗은 홀씨가 아니라고 한다. 홀씨는 원래 꽃이 안 피는 민꽃식물이 바람에 날려 번식하는 수단이다. 민들레 씨앗에 솜털이 붙어 있어 바람에 날려 가므로 홀씨란 오해가 생겼다. 어쨌거나 우리는 지금도 그렇게 여기며 노래도 부르고 있다.

 

 

민들레 홀씨. 서민을 위한 새희망홀씨 대출이 정작 서민을 외면하고

있대서 안타까운 마음에 올려 보았다.



뜬금없이 민들레 노래를 꺼낸 건 ‘새희망홀씨 대출’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어제 신문을 보니 서민을 위한 대표적 대출상품인 새희망홀씨가 정작 서민을 외면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있던 ‘희망홀씨’에서 2년 전 이용 대상을 차상위계층으로 확대한 ‘새희망홀씨’로 바꾸면서 저신용·저소득층에 대한 대출 비중이 절반 이상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 대출은 “서민에게 새로운 희망” 운운하며 대대적인 선전을 폈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난 셈이다. 홀씨는 민들레처럼 홀로 바람에 날리다 착근한다는 뜻으로 썼을 터.

‘하얀 민들레’의 가사와 창법의 불일치는 기교로 볼 수 있다. 그럼 서민 색깔을 진하게 띤 이런 변칙은 뭐라 해야 할까. 우리는 법치, 공정, 공생, 녹색성장 따위 거창한 구호들이 거짓인 건 벌써 안다. 한두 번 속아본 것도 아니고, 이번 것도 그런 것이려니 하면서도 부아가 나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 이름 때문이다. 그럴 바엔 이름이나 살갑게 지어 헷갈리게 만들지나 말던지. 이러니 보금자리주택이니, 알뜰주유소 같은 것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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