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람(僭濫)하다’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으론 ‘분수에 넘쳐 너무 지나치다’는 뜻이지만 기독교에서는 사뭇 다른 뜻으로 쓰인다. 바로 신을 욕되게 하는 것, 즉 신성모독과 같은 의미다.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것도 하나님을 욕되게 한 죄, 곧 참람죄를 저질러서이다.
“대제사장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마가복음 14장) 유대인들은 신을 모독하지 말라는 계율을 엄격히 지켰다. 구약 레위기에 따르면 신성모독의 징벌은 돌로 쳐 죽이는 것이었다. 예수 당시의 군중들로서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참람죄로 정죄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지난주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영화 <죄없는 무슬림>이 이슬람권에서 들불같은 반미 시위를 촉발한 데 이어 반 프랑스 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엊그제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가 이슬람을 모독하는 풍자만화를 실었다는 게 이유다. 레바논에선 “프랑스인에게 죽음을”이란 구호도 나왔다고 한다. 이 잡지는 작년에도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만화를 실어 논란을 불렀다. 한데, 이 잡지 편집장의 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충격을 받고 싶은 이들에게 충격을 줄 것”이라며 이는 언론의 자유라고 말했다. 문제가 될지는 알았지만 표현의 자유도 중요해 실었다는 뜻 같다.
1988년 살만 루슈디의 소설 <악마의 시> 이래 서방의 이슬람 모욕과 이슬람의 반발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대략 이런 논리가 서방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서방 측은 자신들의 가치기준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이는 게 과잉반응이라고 본다. 저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론은 너무 많이 나간 감이 있으나, 이 논란을 일종의 가치 내지 견해의 충돌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복잡할 것 같지만 이에 대한 답은 분명해 보인다. 다른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는 것은 공존을 위한 중요 조건이다. 서양엔 참람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의 엄연한 역사가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 신앙은 정체성이며 자아이며 생명이다. 이중잣대를 버리고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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