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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안철수식 레토릭

“There’s no need to watch the bridges that were burning(불타는 다리를 바라볼 필요는 없어요).”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부른 추억의 팝송 ‘포 더 굿 타임’에서 헤어져야 하는 연인들은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이렇게 다짐한다. “그냥 기뻐하기로 해요/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남았다는 걸.” 그 다음 나오는 게 ‘불타는 다리’다. 맥락으로 보아 다리는 지난 일들에 대한 미련 같은 것이리라. 미련을 버리고 그 순간의 사랑에 충실하자는 뜻 같다.

안철수 대선 후보가 ‘다리를 불태운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엊그제 <PD수첩> 정상화를 위한 행사에 참석한 그에게 사회자 김미화씨가 “(대선을) 끝까지 완주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제가 지난주 수요일(출마선언을 한 19일)에 강을 건넜고,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였다. 이것은 즉각 대선 완주와 대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분명히 보인 것이란 해석을 낳았다. 그럴만도 한 것이, 영어에서 ‘뒤에 있는 다리를 불태우다’는 동양의 ‘배수진을 치다’란 말과 비슷한 표현이다.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처지에서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진다는 뜻으로 해석할 만하다.

 

   

 ‘포 더 굿 타임’에서 "불타는 다리를 바라볼 필요는 없어요"라고 노래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안철수 후보는 대선 완주 문제에 대해 "강을 건넜고,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고 말해 완주 결의가 굳다는 추측을 낳았다.

             

 
안 후보를 책상물림 출신의 벤처사업가 정도로 여기는 사람은 그가 이례적으로 단호한 레토릭(수사)을 구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 듯하다. 그는 출마선언 때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란 말을 던졌다. 미국 SF작가 윌리엄 깁슨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미래’를 ‘안철수’로 바꿔보면 다가오는 의미가 가히 촌철살인급이다.

삼성동물원이니 LG동물원이니 하는 ‘재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비유를 자주 쓴 것도 안철수 어법의 특색일 수 있다. 작년 3월 관훈클럽 초청 포럼에서 그는 “신생 업체는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에 납품하기 위해 불공정 독점계약을 울며 겨자 먹기로 맺게 되는데, 그 순간 삼성동물원, LG동물원에 갇히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동물원에서 죽어야만 빠져나올 수 있다”고도 했다. 이런 도전적 발언은 앞으로 더욱 빈발할지도 모른다. 늦게 선거전에 뛰어든 안 후보가 신비주의, 비밀주의란 비판을 의식할수록 그렇다. 그것 자체가 관전포인트면서 검증과정이 될 수도 있다. 이번 대선이 이래저래 흥미로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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