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루비콘강을 건넜다’란 표현을 쓴다. 가령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MBC 파업사태와 관련해 “김재철 사장이 루비콘강을 건넌 것 같다”고 했다. 김 사장이 야당 인사 21명을 비난하는 신문광고를 낸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귀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은 얼마 전 그리스의 긴축 프로그램에 대한 재협상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긴축 재협상은 건널 수 없는 루비콘강”이란 표현을 썼다.
이렇게 ‘루비콘강을 건너다’는 말은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다란 뜻으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 유래에는 자못 의미심장한 사연이 있다. 다른 무엇보다 그 절체절명(絶體絶命)적 성격이 그렇다. 기원전 49년 로마의 갈리아주 총독 카이사르는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란 말과 함께. 무장해제를 하지 않은 채 루비콘강을 건너는 것은 곧 로마에 대한 반역·반란을 의미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딱 쿠데타였다. 카이사르는 그렇게 로마로 진군해 최고권력자에 오른다.
이탈리아 북부 루비콘강의 추정 위치.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을 던지며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했다. 그것은 곧 쿠데타였다. 인명진 목사는 박정희의 5·16이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박근혜의 발언이 "루비콘강을 건넌 것 같다"고 의미심장한 해석을 내렸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가 엊그제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 음미할 만한 대목이 보인다. 인터뷰 자체는 이른바 안철수 현상 분석이 주조였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박근혜 의원이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넌 것 같다”고 진단한 부분이다. 인 목사는 “박 의원 자신이 한 5·16 발언(‘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을 국민의 50% 이상이 지지한다는데, 근거는 어디고, 믿을 만한 수치이냐”고 물었다. 최근 박 의원이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와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 토론회에서 한 발언을 두고 한 것이었다.
인 목사가 로마판 쿠데타까지 염두에 두고 루비콘강 얘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버지의 쿠데타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평가하는 딸의 인식을 두고 ‘루비콘강’ 고사를 사용한 것은 묘한 역사적 일치란 느낌을 갖게 하며, 따라서 탁월한 비유란 생각이 든다. 그 옛날 루비콘강을 건너던 카이사르의 심리는 그대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5·16 때 군대를 이끌고 한강을 건너던 박정희 소장도 그랬을 거다. 그러면 쿠데타를 당시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대선에 나서는 박 의원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그 전에, 이 박정희의 분신은 쿠데타가 민주적 검증과 상극적 과정이란 인식 정도는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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