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기업들이 세금을 피해 영국으로 온다면 레드카펫을 깔고 환영하겠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던진 이 한마디 농담이 프랑스와의 감정싸움으로 번질 뻔했다고 한다. 며칠 전 멕시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간 캐머런은 기업인들과 만나 이렇게 말하고 “이 세금은 영국 의료 서비스와 공교육을 위해 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세율은 전혀 경쟁력이 없다”고도 했다. 상식적으로 남의 나라 세금문제에 대해 이런 평가를 한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
영국 총리실은 나중에 “영국식 농담”이었다고 해명했지만 듣는 프랑스로선 여간 기분 나쁜 게 아니다. 가뜩이나 사회당 정부의 증세 정책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거센 판에 이웃 나라 총리가 던진 이 말은 독설 이상의 원색적 비난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모든 사람은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유럽의 연대가 강해져야 할 때 나는 그걸 깨뜨리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클로드 바르톨로니 프랑스 사회당 의원은 “(영국 총리로서는) 해서는 안될 말”이라고 했고, 피에르 로랑 공산당수는 유럽의 조세 피난처를 노리는 영국의 속내가 드러났다고 비꼬았다. 프랑스로선 유로존 바깥의 영국이 이러는 게 어이없을 법도 하다.
캐머런 영국 총리가 프랑스를 향해 내뱉은 독설성 농담은 그의 평소 가벼운 말버릇의 소산인 듯 하다. 하지만 그 바닥에는 100년전쟁까지 벌인 두 나라의 오랜 앙숙관계가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사진은 100년전쟁에서 프랑스의 승리를 이끈 잔다르크의 일생을 그린 영화 <잔다르크>의 한 장면이다.
캐머런이 뭣하러 그런 농담으로 평지풍파를 일으켰는지가 궁금하긴 하다. 보수당 연립정부를 이끄는 그가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증세를 통한 경기부양 정책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고 봐야 하나. 하지만 무슨 심오한 해석보다는 그가 원래 입이 좀 가볍다는 풀이가 나온다. 그는 재작년 미국 방문 때 “1940년 독일 나치 군대와 싸울 때 영국은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였으며 지금도 그렇다”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당시 미국은 참전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역사적 사실조차 망각한 실언이었다.
또 하나, 이 농담 파문은 ‘이웃 나라끼리 앙숙 아닌 경우가 별로 없다’는 속설을 증명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일관계가 그렇지만 프랑스와 영국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는 나라도 드물다. 14~15세기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벌인 100년전쟁 이래 라이벌 관계는 역사가 됐다. 오죽하면 축구에서도 잉글랜드·스코틀랜드·프랑스가 싸울 때 스코틀랜드는 프랑스를, 프랑스는 스코틀랜드를 응원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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