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6년 3월 2일(현지시간) 이란에 지상군을 투입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이란을 상대로 한 추가 대규모 공격 가능성도 밝혔다.
입력 2003.04.13 18:46
작가 송영의 근작 소설집 ‘발로자를 위하여’에 실린 같은 이름의 단편에는 작가가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면서 만난 러시아 친구 발로자로부터 우화시인 이반 크릴로프가 쓴 ‘양과 늑대의 우화’에 대해 듣는 장면이 나온다. 양과 늑대가 물을 마시러 냇가로 나왔다. 늑대는 시내의 위쪽에, 양은 아래쪽에 자리잡았는데 늑대는 ‘너 때문에 물이 흐려졌다’고 시비를 건다. 양은 ‘나는 아래쪽에 있는데 물이 흐려졌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항의했으나 늑대는 ‘너의 죄는 나만큼 힘이 없다는 것’이라며 양을 잡아먹어 버렸다. 러시아의 가난한 젊은 지식인 발로자는 사회주의 때나 지금이나 이 우화는 러시아에서 진실로 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번에는 곰에 관한 얘기다. 미국의 신보수주의 이론가 로버트 케이건은 올 초 발표한 ‘미국 대 유럽, 갈등에 관한 보고서’(원제는 파라다이스 앤드 파워)에서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본질적으로 힘의 차이로 규정하고 곰의 위협과 관련한 논리를 펴고 있다. 가령 무기라고는 칼 한 자루밖에 없는 사람은 숲속을 배회하는 곰을 용인할 만한 위험으로 치부할 수 있다.
납작 엎드린 채 곰이 덤벼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칼 한 자루로 곰을 잡는 것보다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사람이 소총을 갖고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는 곰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곰을 찾아내 제거한 다음 편안하게 살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케이건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곰으로, ‘힘이 약한 유럽’을 칼을 가진 사람으로, ‘힘이 강한 미국’을 소총을 가진 사람으로 비유한 것은 물론이다.
칼 한 자루가 아닌 소총을 가진 미국은 과연 당면한 위협의 정면돌파를 선택했고 미국의 침공 드라마는 할리우드적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있다. 21세기는 이렇게 힘과 폭력과 전쟁의 세기로 문을 연 것이다. 반전을 외치던 프랑스 독일 등은 이같은 사태진전에 적이 당황한 채 전후 복구사업에서 한몫 챙기기를 희망하며 미국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유럽과 미국을 명쾌한 이분법으로 분류한 케이건의 논리는 9·11테러 사태 이후 부시 미국 대통령이 구사해온 선악의 이원론과 통한다.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세계를 미국편과 그렇지 않은 편으로 분류했고 지고의 선인 미국에 대항하는 세력에는 ‘악’이란 선고를 내렸다. 이같은 이분법적 세계관은 미국이 유일의 ‘하이퍼 파워’로 계속 군림하며 힘의 논리를 펴는 한 더욱 강고해질 것 같다. 한국 정부가 이라크전 파병을 결정한 배경에도 미국식의 강요된 이분법에 대한 고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한편으로 한국사회 일각에서는 근래 반전평화운동의 확산과 더불어 이같은 이분법적, 양극단의 대립구도를 극복하려는 논의가 이뤄져 눈길을 끈다. 계간 당대비평이 봄호에서 특집으로 친미·반미, 친일·반일을 비롯해 통일·반통일 논의, 세대논쟁 등 분야별로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편가르기 논리의 극복을 시도한 것도 그런 움직임의 하나다.
그러나 이라크전 승리에 도취한 미국은 앞으로 한국의 이분법적 세계관 극복을 위한 진지한 고민에 더욱 강력한 방해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구실로 대북압박을 크게 강화할 것이며 그 방안으로 군사력 사용도 심심치 않게 거론할 것이다. 그렇다면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던 시도는 어느 틈에 안보논의의 뒷전으로 밀려나버릴 수도 있다. 미국과 유럽의 세계관 차이에 대한 분석도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그보다 시급한 것은 우리 사회 자신의 생존논리 구축이며 그 출발점은 미국식 이분법을 넘어선 사고의 다양성이 돼야 한다. <김철웅/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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