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3.13 18:52 〈김철웅·국제부장〉
올봄 여성 패션은 연둣빛 실크 스커트 같은 복고풍이 주류라는 소식이다. ‘올드 패션’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신세대들까지 이 패션에 적극적인 것을 보면 복고풍에는 매력적인 요소가 있나보다.
인간 본연의 아련한 과거에 대한 향수, 추억, 그런 것들이 복고풍 유행의 요인일 것이다. 구세대의 흘러간 노래 취향이나 ‘옛날이 좋았어’란 식의 입버릇에도 복고적 심리가 깔려있다. 현실적 불만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좋았던 옛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오늘날 러시아인들의 구 소련, 심지어 스탈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그런 것이다.
과연 옛날은 ‘꿈엔들 잊으리요’를 노래할 만큼 좋은 것이었나.

#2001년 1월 조지 부시 대통령 취임식을 취재하기 위해 미국에 출장간 길에 필자가 산 베트만의 책(당시는 경향신문 국제부장이었음)
세계적 사진·그래픽 문서보관소인 미국 베트만 아카이브의 설립자 오토 베트만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의 일단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좋았던 옛시절-그것은 끔찍했다’란 책에서 흘러간 과거에 대한, 막연하나마 긍정적이었던 생각들을 통렬히 깨부순다.
이 책이 다룬 미국 남북전쟁(1861∼65년) 종전부터 1900년대 초반 사이는 미국인들이 ‘좋았던 옛시절’을 얘기할 때 가장 자주 언급하는 시기이다. 문헌 전문가답게 그는 생생한 삽화와 사진을 풍부하게 동원해 당시 도시·농촌의 환경 주거 노동 식품 보건 등 생활 전반의 수준이 얼마나 참혹한 것이었는지를 실증한다.
예를 들어 내전 후 미국 북부 도시의 공기는 급속한 공업화로 숨쉬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당시 의사들은 공장연기 속의 탄소와 황, 요드가 폐질환 치료에 효과적이며 말라리아를 박멸한다는 무지막지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사고로 두 다리를 잘렸으나 보상은 못받고 해고가 두려워 목발을 집고 출근하는 철도노동자, 거리에서 썩은 과일을 사먹고 있는 창백한 어린이들의 사진과 삽화도 있다.
옛시절은 한 줌의 특권층에게만 좋은 것이었을 뿐 농부 노동자와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게는 참으로 끔찍한 것이었다고 이 책은 결론내리고 있다.
베트만의 논리는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과거의 물질적 궁핍을 벗어난 대가가 현재의 정신적 황폐와 환경오염이므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엄밀히 따지면 결과는 O이라 치자. 정치적으로 확연히 현실과 구분되는 과거는 끔찍했던 군사정권의 압제였다.
오늘날 민주화 대열에 끼기는 커녕 그 정권에 봉사했던 자들까지 민주를 논하거나 현정권의 ‘독재’를 규탄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한다. 이쯤되면 ‘옛날이 좋았어’가 아니라 ‘세상 좋아졌어’인 것이다.
대개는 현실의 고달픔에서 비롯된 ‘옛날이 좋았어’란 푸념은 과거의 추악함을 망각이란 이름의 카펫으로 덮어버린다. 그래서 과거는 그저 푸른 하늘 아래의 드넓은 초원, 그 위에서 뛰노는 어린이들과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부자들의 모습으로만 남는다.
여인의 복고풍 패션은 미에 대한 순수한 추구로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쁜 과거의 망각은 오히려 미덕일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무분별하면서도 자의적인 노스탤지어, 망각과 현실부정이 개인적·집단적 이기주의와 뒤섞일 때는 문제가 심각하다.
일본 극우세력의 교과서 왜곡은 과거의 추악한 사실을 미화하려는 시도임을 우리는 잘 안다. 나는 오늘날 사회 일각에서 이승만, 박정희에게 바쳐지는 불가사의할 정도의 존경심도, 유럽에서 부는 신나치주의 바람도 왜곡된 노스탤지어 현상으로 규정하고 싶다. 모모한 전직 대통령이 ‘통이 크고 화끈했다’는 식의 노스탤지어는 바로 망각의 카펫을 뒤집어쓴 결과다.
복고풍은 이상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TV 역사극을 놓고 벌어진 정치인들의 ‘아지태 논쟁’은 현실정치를 왕조시대의 권력투쟁으로, 자신을 역사 속의 영웅호걸로 착각한 데서 비롯됐다. 이런 발상과 인권·민주·자유와의 양립은 기대 난망이다.
또 이런 사고구조일수록 겉으로는 천하를 논하지만 속마음은 지역주의로 가득차 있기 십상이다. 역사발전은 과거는 과거이며 우리의 아카디아는 미래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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