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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데스크 칼럼]‘햇볕’과 ‘포용’의 차이

입력 2001.01.30 19:23
한국 정부의 ‘햇볕정책’을 놓고 말이 많다. 특히 미국 신행정부의 대 한반도 정책 선회 여부를 점치기 위한 숱한 분석이 나오면서 햇볕정책이 다시한번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최근 부시 대통령의 취임으로 논의의 무대는 미국으로 옮겨졌다.

그 중 압권은 며칠 전 리처드 아미티지 미국 국무부 부장관 내정자가 한국 정치인에게 대북한 햇볕정책이란 용어 대신 ‘포용정책’이란 표현을 사용해 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벌어진 일대 소동이다.

아미티지 내정자가 이 용어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그것이 북한에 지나치게 유화적이란 인상을 준다거나 그 성패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결심에 좌우된다는 이유였다고 한다. 이것도 정확하게 전달된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가 ‘햇볕(sunshine)’보다 ‘포용(engagement)’이란 표현을 선호했다는 점만은 사실인 것 같다.

일설에는 북한이 ‘햇볕’이란 용어에 거부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대신 ‘포용’을 쓰자고 제안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이미 포용정책이란 말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미국 공화당의 대표적인 아시아통으로 일컬어지는 그가 이 사실도 모르고 그런 제안을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북한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후 포용정책은 햇볕정책의 변종으로 똑같이 남측이 북측을 흡수통일하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남북문제에 관한 북한의 일관성에 문제가 있다고 치더라도 ‘포용정책은 햇볕정책의 변종’이란 주장에는 일견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좀더 엄밀히 말해 햇볕정책은 포용정책의 한국적 변형이다.

포용정책은 미국이 대외정책을 말할 때 이미 오래 전부터 널리 사용해온 것이다. 영어로 ‘인게이지먼트’인 포용은 ‘개입’으로 달리 번역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전 대통령(임기 1989년 1월 20일~1993년 1월 20일)은 1992년 해사 졸업식에서 소련 붕괴로 인한 냉전종식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군사력 우위와 국제문제 ‘개입정책’을 견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199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거대 공산국가인 중국을 고립시키라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대중국 ‘개입정책’을 옹호했다. 포용과 개입 2가지로 번역되던 인게이지먼트는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과 함께 언제부턴가 ‘포용’이란 번역으로 굳어졌다.

쉽게 말해 포용정책이 이미 확립된 미국의 국제정치 용어라면 햇볕정책은 한국판 ‘동방정책’이다. 포용정책은 미국이 러시아나 중국, 북한 등에 대해 두루 구사할 수 있는 포괄적 정책인 반면 햇볕정책은 한국이 오로지 북한에 대해 채택하고 있는, 한국적인 통일정책이다. 아미티지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햇볕정책을 포용정책으로 바꿔 부르라고 한 것을 미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의 신호로 인식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한·미 양국간 접근방식에는 본질적으로 용어 문제가 아니라 사고와 이해의 편차가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우려스런 문제는 이런 한마디 발언이 즉각 파장을 몰고오는 현실이다. 아미티지의 발언을 옆에서 직접 들은 함성득 고려대 교수는 “아미티지가 (자신의 발언과 관련한) 기사를 보면 웃지 않겠느냐”고 해프닝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조지 W 부시 미국 제 43대 대통령. (당시 경향신문 국제부장인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2001년 1월 20일 워싱턴에서 있었던 그의 취임식에 참석했다. 한국언론사는 8~9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시의 취임식을 전후해 워싱턴에 나타난 일군의 한국 정치인들은 아미티지 등 공화당 유력 인사들로부터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세계유일의 패권국가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얻으려는 충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 나라 통일문제를 강대국의 유력인사에게 귀동냥하려는 듯한 모습은 보기에도 안좋을 뿐더러 닥쳐올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태도도 아니다.

현단계에서 부시 행정부 주변으로부터 단편적으로 흘러나오는 한반도 정책과 관련된 발언들에 대해 일일이 자구해석을 가하려는 시도 역시 지나치게 낭비적이란 생각이다.

아미티지식 발언에 대해 한국 조야가 보이는 소란스런 반응에는 필시 정쟁적 사고가 깔려 있으며 그 와중에 실종돼 버린 것은 주체적 사고역량이다. 여당이나 기존 햇볕정책의 지지자들은 아미티지의 발언이 ‘내정간섭’적이라며 발끈했고, 햇볕정책을 비판하던 야당측은 거의 득의양양한 모습이다.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김철웅/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