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경향신문에 쓴 칼럼, 공유합니다. 일부 교회의 극우화가 그때는 저리가라 할 정도가 됐습니다
2006.09.26 18:36
한·미간의 전시 작전통제권(작통권) 이양·환수 문제를 둘러싼 논란 과정에서 한국의 보수층은 또 한번 체질화된 ‘숭미(崇美)·반공 이데올로기’를 드러냈다. 보수층 가운데도 미국에 대한 숭모의 염을 가장 진솔하게 보이는 곳은 기독교 보수교단이다.
강력한 대중 동원력을 가진 최대 기독교단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이달 초 재향군인회, 사학수호국민운동본부와 함께 작통권 환수 반대집회를 열었다. 수만명이 모인 이 비상구국기도회·국민대회에서 길모 목사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하고 있는 이때 전시 작통권 문제로 국가안보가 위태롭다”며 “1천2백만 성도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때”라고 설교했다. 이들에게 작통권 환수=국가안보 위기가 된다. 미국에 대한 절대적 신뢰 때문이다.
한기총이 이렇게 사회적 현안을 들고 교회 밖으로 나온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2002년 월드컵 와중에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효순·미선양을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잇따라 열리자 이들은 구국기도회를 열어 반미를 규탄하고 주한미군 철수 반대를 외쳤다. 당시 김모 목사는 “외신기자들과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국 상·하원의원들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도록 하자”며 영어로 기도해 미국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표현했다.

-한국 기독교 보수교단의 ‘崇美’-
한국교회의 이같은 행태는 뿌리 깊은 ‘숭미·반공 이데올로기’와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여기엔 나름의 역사적 근거가 있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우리와 함께 싸운 혈맹이자 현재 유일한 동맹국이다. 미군은 이 전쟁에서 3만6천9백40명이나 희생됐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지도 반세기가 넘었다. 이 동맹의 정신은 한국의 월남 파병, 이라크 파병으로 이어져 왔다. 이진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은 선교사를 통해 이 땅에 복음을 처음 전해 준 ‘은혜의 나라’이며, 일제의 압제로부터 한국을 해방시킨 ‘해방자의 나라’이며, 북한 공산주의 집단의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 ‘혈맹의 나라’이며, 전후 굶주린 고아와 난민들을 도와준 ‘구호의 나라’로 한국 개신교인의 의식 속에 각인돼 있다”고 설명한다. 박득춘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는 “기본적으로 기독교가 미국을 통해 전해진 ‘태생적 한계’가 있다. 미국에서 기독교는 보수화했고 우리 교회도 이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보수적 기독교 신앙과 이에 바탕한 이분법적 세계관은 유명하다. 그는 9·11 테러 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미국과 미국에 동조하는 국가는 ‘선’으로, 테러리스트와 미국에 반대하는 국가는 ‘악’으로 분류했다. 부시의 극단적 선악 이분법은 기독교 보수파들에게서 나타나는 경직된 세계인식의 틀을 보여준다.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 지도자들도 이런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의 생각은 북한 정권에 대한 이들의 증오심에 그대로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상대적으로 오직 미국의 군대만이 우리나라를 악으로부터 지켜주는 방패라는 믿음은 굳어진다. 군사 독재 시절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워 사회문제에 관여하지 말 것을 주장했던 이들이 태도를 바꾼 것은 고조된 반미 분위기 앞에서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세상 모순에 외면하지 말길-
무릇 종교에는 종교만의 기능과 역할이 있다. 개인적 참회와 성찰, 그리고 사회적인 구휼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세상의 모순을 외면하지 말고 그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신의 뜻을 이 땅에서 구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쏟는 종교라면 가령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초래한 엄청난 비극을 최소한 외면해선 안된다. 이 부도덕한 전쟁으로 이라크 민간인만 4만2천명 이상이 숨졌다. 미군 병사들의 희생도 늘고 있다. 미국은 중동 패권 장악을 위한 이 전쟁에 천문학적인 전비를 들이고 있다.
미국 권력이 저지른 이런 죄악에는 일절 침묵하면서 ‘보수세력 총궐기’에 앞장서겠다는 기독교 보수주의 지도자들의 생각은 균형잡힌 게 아니다. 그런 것보다는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이나 동북아 군비경쟁을 피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김철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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