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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칼럼

왜 반미인가

[데스크 칼럼]왜 반미인가

입력 2002.11.24 18:40

#24년 전 쓴 반미에 대한 칼럼 공유합니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란 문제는 역시 중요한 것이다. ‘친미냐 반미냐’와도 맥이 닿는 이 문제는 엇그제 단일화에 나선 대선 후보들의 토론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됐을 만큼 민감한 화두임이 분명하다. 신문사 국제부 데스크 입장에서 볼 때 국제 주요 뉴스의 약 80%가 관련된 나라, 그래서 신문 국제면이 ‘아름다울 美’자 제목으로 도배되지 않도록 고심하게 만드는 나라가 미국이다. 언제부턴지 기사 속에 ‘부시 미 대통령, 미 국무부’ 등 ‘국’자를 빼고 표기해도 어색하지 않은 나라가 미국이다. (참고로 ‘블레어 영 총리, 중 외교부’ 등으로는 쓰지 않는다)

미군병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요식행위로 그친 여중생 압사사건 재판 이후 연일 반미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도 노근리 학살 폭로를 비롯해 매향리 사격장, 한강 독극물 방류 등 숱한 사건들이 반미시위를 촉발시켰다. 그때마다 경찰은 물샐틈 없이 시위를 저지하고 있다. “한국 경찰이 국민은 두들겨 패고 미군만 보호하느냐”는 한 시민의 분통은 자주와 종속의 문제까지 생각케 한다.

#2025년 4월 5일 미국 델라에워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반대하는 ‘핸즈 오프’ 시위가 열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미감정과 반미시위의 확산은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이다. 죄없는 여중생들의 무참한 죽음과 불공정한 재판이 반미감정을 촉발시킨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에 대한 항의 또한 지극히 온당하다. 특히 9·11 테러 이후 이슬람권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반미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침공 계획에 대한 반전시위, 반미구호를 담은 반세계화 시위는 일상화돼 있다. 이들의 과격성과 규모에 비하면 한국의 그것은 실로 온건한 것이어서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정부 차원에 이르러서는 더 할말이 없다. 한국 정부는 이번 판결이 반미로 연결되는 데 대한 우려까지 표명했다. 며칠전 나토회담에 참석한 캐나다 총리의 대변인이 부시 미국 대통령을 ‘저능아’로 표현했던 소동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도 한국에 유독 반미감정이나 반미시위를 마치 일제하 독립운동처럼 불온한 것으로 간주하려는 시각이 상존하고 경찰이 미국의 충성스런 파수꾼역을 하는 연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이같은 비정상적 현상의 근저에는 반미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미국 무오류론’에 가까운 그릇된 미국관이 깔려 있다.

한국에서의 반미에 대한 비판은 예외없이 미국이 국제정치의 최강자란 현실론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줄에 서야 한다는 노골적인 주장도 있지만 대개는 이같은 현실을 외면한 반미가 감상적·시대착오적·국수적 입장으로 기울어 국익을 해칠 수 있다는 점잖은 경고를 하고 있다. 조금 발전한 입장은 친미의 대안으로 지미(知美)·용미(用美) 전략을 제시한다.

반미의 순진성과 위험성을 강조하는데 몰두해 있는 이런 주장들에서는 미국 자체에 대한 비판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를테면 이들은 ‘혈맹’인 미국의 한국 주둔군 철수 주장이 가져올 안보위협을 신속히 비판한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전략 운용 과정에서 저질러온 과거의 더러운 전쟁이나 미국 강경파의 군사력 의존 일변도가 가져올 수 있는 재앙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미국이 통일 저해세력일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완전 금기사항이다.

재미 학자인 최정무 교수가 내린 한가지 해석이 흥미롭다. 그는 한국 방문 때 듣게 되는 “언제 미국에 들어가느냐”란 이상한 질문의 심리를 ‘무의식의 식민화’로 표현한 바 있다. “일제에서 해방된 후에도 한국인들은 식민지적 병리현상을 지속시켜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를 주변화시키고 비하하면서 미국문화를 지속적으로 모방, ‘무의식의 식민화’를 심화시켜 왔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는 과거 흑백 TV 시절 미제 전쟁드라마 ‘전투’를 보며 길들여진 미국·미군에 대한 막연한 ‘우리편 의식’과 상통한다.

미국이 유일초강국이며 나아가 유일한 ‘세계권력’임을 인정한다면 그 권력에 대한 비판의 필요성은 오히려 더욱 절실해진다는 게 논리적으로도 맞다. 다만 미국 비판은 감정적 차원을 넘어 이성적·과학적인 것이 돼야 한다. 한신대 이해영 교수가 표현한 바 ‘반미이성’의 필요성이다. 맹목적 미국 숭배가 그렇듯 감정에 치우친 반미 역시 균형감각 상실의 오류에 빠질 수 있고, 골수 숭미파들에게는 역공세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철웅/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