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전 쓴 첫 칼럼입니다.
2000.10.24 18:59 김철웅·국제부장
“우리와 그대들은 서로 다른 인종이며 서로 다른 기원, 서로 다른 운명을 갖고 있다. 그것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 그대들에게 공통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1853년 미국 워싱턴 지방의 늙은 인디언 추장 시애틀은 백인들이 자기 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을 때 격랑이 밀려오듯 웅변을 토해냈다. 그는 백인 인디언 담당관 스티븐스 장군의 머리에 한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으로 천천히 하늘을 가리키며 위엄과 심오함을 담아 자신만의 세계관을 설파했다. “발에 묻는 먼지조차도 그대들보다 우리들의 발에 더 잘 붙는다. 그것은 우리 선조의 신성한 회진(灰塵)이기 때문이다…”
1999년 12월 늙은 추장 시애틀의 이름을 딴 도시 시애틀에서는 뉴라운드 출범을 위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렸다. 무역자유화를 완결짓기 위한 뉴라운드는 그러나 이곳에 몰려든 반 세계화, 반 신자유주의 활동가들의 격렬한 시위로 무산됐다.
시애틀 추장의 항변과 반 세계화 운동가들의 시위는 그 시대와 표현방식에 현격한 차이가 있지만 자세히 보면 중대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오늘날 반 세계화 운동가의 관점을 빌린다면 그것은 “각자의 고유한 문화와 지역적 공동체들을 제거하고 이 세상을 비슷한 원자들로 구성된 단일의 합성체로 만들려는 세력의 오만한 세계전략에 대해 항거한다는 외침”이다(월든 벨로 필리핀대 교수).
반 세계화 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불리는 시애틀 시위가 늙은 추장의 땅 위에서 벌어진 사실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의미심장하다. 1968년 4월 프라하에서 개혁파의 자유와 민주에 대한 외침은 ‘프라하의 봄’을 불러왔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란 이들의 절규는 그러나 탱크에 짓밟혔고 봄은 너무나 짧게 끝났다. 2000년 9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 총회는 반 세계화 시위의 위력에 밀려 하루 앞당겨 폐막하고 만다. 이번에 나온 구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였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군사독재 종식과 자유 민주를 외치던 목소리는 군화발에 의해 여지없이 유린됐다. 그러나 민주화 열기는 1987년 6월 다시 불붙었고 그때의 최루탄, 화염병, 그리고 넥타이 부대는 ‘직선제로 호헌철폐’란 구호와 함께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다시 서울 2000년 가을. 지난 주말 건국이래 최대의 외교잔치라는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난무하는 경찰봉과 돌팔매질은 전혀 낯설지 않았지만 시위대의 구호는 과거와 딴판이었다.
시애틀과 프라하발 외신을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던 ‘반 세계화’ ‘반 신자유주의’란 구호가 서울에도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독재타도나 보안법·노동악법 철폐와 같이 구체적이고 선명한 구호들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반 세계화 구호는 일견 모호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세계화란 말의 추상성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지난 몇년간 세계화는 막연하나마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사회주의 몰락 후 세계가 나가야 할 유일한 지향점처럼 선전되어온 것이다.

#2015.06.04일 독일 뮌헨에서 4일(현지시간)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반대하는 3만여명의 시민이 반대집회를 열고 있다. © AFP=뉴스1
그러나 이제 세계화가 자유주의의 ‘새 버전’인 신자유주의와 동의어가 돼 버린 현실을 직시한다면 그 모호함은 어렵지 않게 극복된다. 개인간, 국가간 자유경쟁을 본질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부익부 빈익빈, 빈부격차의 세계화란 치명적 독소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반 세계화 논의는 아직 초보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등식관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한 반 세계화 운동은 잠들기는커녕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연대(連帶)를 활동의 주요 원천으로 삼고 있는 이 새로운 피플파워가 펼치는 ‘반 세계화 운동의 세계화’ 흐름에서 한국이 결코 열외가 될 수 없음을 지난 아셈은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반 세계화 운동가의 관점을 빌린다면 그것은 “각자의 고유한 문화와 지역적 공동체들을 제거하고 이 세상을 비슷한 원자들로 구성된 단일의 합성체로 만들려는 세력의 오만한 세계전략에 대해 항거한다는 외침”이다(월든 벨로 필리핀대 교수).
반 세계화 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불리는 시애틀 시위가 늙은 추장의 땅 위에서 벌어진 사실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의미심장하다. 1968년 4월 프라하에서 개혁파의 자유와 민주에 대한 외침은 ‘프라하의 봄’을 불러왔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란 이들의 절규는 그러나 탱크에 짓밟혔고 봄은 너무나 짧게 끝났다. 2000년 9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 총회는 반 세계화 시위의 위력에 밀려 하루 앞당겨 폐막하고 만다. 이번에 나온 구호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였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군사독재 종식과 자유 민주를 외치던 목소리는 군화발에 의해 여지없이 유린됐다. 그러나 민주화 열기는 1987년 6월 다시 불붙었고 그때의 최루탄, 화염병, 그리고 넥타이 부대는 ‘직선제로 호헌철폐’란 구호와 함께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다시 서울 2000년 가을. 지난 주말 건국이래 최대의 외교잔치라는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난무하는 경찰봉과 돌팔매질은 전혀 낯설지 않았지만 시위대의 구호는 과거와 딴판이었다.
시애틀과 프라하발 외신을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던 ‘반 세계화’ ‘반 신자유주의’란 구호가 서울에도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독재타도나 보안법·노동악법 철폐와 같이 구체적이고 선명한 구호들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반 세계화 구호는 일견 모호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세계화란 말의 추상성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지난 몇년간 세계화는 막연하나마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사회주의 몰락 후 세계가 나가야 할 유일한 지향점처럼 선전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화가 자유주의의 ‘새 버전’인 신자유주의와 동의어가 돼 버린 현실을 직시한다면 그 모호함은 어렵지 않게 극복된다. 개인간, 국가간 자유경쟁을 본질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부익부 빈익빈, 빈부격차의 세계화란 치명적 독소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반 세계화 논의는 아직 초보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등식관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한 반 세계화 운동은 잠들기는커녕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연대(連帶)를 활동의 주요 원천으로 삼고 있는 이 새로운 피플파워가 펼치는 ‘반 세계화 운동의 세계화’ 흐름에서 한국이 결코 열외가 될 수 없음을 지난 아셈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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