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철웅 칼럼

나라가 흔들린다?

<#요즘 몇몇 신문들에 따르면 나라가 진짜 ‘결딴날’ 위기에 빠진 것 같다. 이들은 새정권에 대한 분풀이식 반감을 감추지 않으면서 ‘나라가 흔들린다’는 식의 헤드라인을 애용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에 쓴 제 칼럼에 있는 내용입니다. #공유합니다.


<데스크칼럼>나라가 흔들린다?

입력 2003.06.29 18:28

나라가 엉망이라는 개탄이 요란하다. 이 위기론의 본질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 속에서 1991년 보수파의 불발 쿠데타 이후 해체기의 소련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총체적 혼란에 빠져 있을 당시 저명한 개혁파 경제학자 그리고리 야블린스키가 서방언론에 피력한 낙관론이 생각난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세가지의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시장경제로의 이행, 시민사회의 건설, 그리고 민족분규의 해결이 그것이다. 어려운 것은 이 과정들이 한꺼번에 이뤄지고 있는 데다 단기간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서유럽 시민사회의 형성에는 18∼19세기 200여년이 걸렸다. 70여년간 공산체제였던 러시아의 혼란은 당연한 일이다”

-서유럽 시민사회 200년 걸려-

나중 개혁정당을 이끄는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야블린스키의 말은 러시아의 현 상황을 조급하게 비관할 필요는 없으며, 꾸준한 개혁만이 혼란의 해결책이라면서 서방의 지원을 주문한 것이다. 그 후 10여년이 지났지만 러시아는 아직도 새로운 국가 형성의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비친다.

우리는 소련 붕괴 후의 러시아를 무턱대고 얕잡아보려는 경향이 있으나 결코 그럴 계제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야블린스키의 논리는 한국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역사는 50여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재벌·금융·노동 등 경제문제가 뜨거운 이슈라는 점에서 보면 한국도 경제적 이행기에 놓여 있으며 갈 길이 멀다. 시민사회란 측면에서의 한국의 진보수준은 또 어떤가. 시민사회를 사·농·공·상 등과 같은 신분적 구분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사회로 정의할 때 한국은 여전히 지연과 학연·혈연이 건전한 이성과 합리를 압도하는 비시민사회다. 여기에 성·인종·지역 등에 따른 차별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진정한 시민사회는 요원해 보인다.

우리의 경우 러시아의 ‘민족분규’에 해당하는 것은 민족해방, 통일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식민지를 거친 이 나라는 지금 분단시대를 겪으며 좌우 이념 대립이 상존해 있고, 남쪽에도 냉전적 안보논리가 횡행하고 있다. 통일로 화장한 반통일 세력은 강고하다. 이런 측면에서 남한과 북한을 통틀어 이 나라가 러시아 같은 ‘신생국’보다 훨씬 성숙한 국가 건설 단계에 와 있다는 생각은 전혀 착각일 수 있다.

요즘 몇몇 신문들에 따르면 나라가 진짜 ‘결딴날’ 위기에 빠진 것 같다. 이들은 새정권에 대한 분풀이식 반감을 감추지 않으면서 ‘나라가 흔들린다’는 식의 헤드라인을 애용하고 있다. 이를 읽는 사람들도 덩달아 비슷한 우국충정에 빠져든다. 국립현충원을 찾은 신임 야당 대표는 방명록에 ‘흔들리는 나라, 바로잡겠습니다’라는 글로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들의 논법에 따르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디까지나 ‘침몰하는 나라’, 혹은 ‘파탄의 수렁에 빠진 나라’다. 과거 독재 치하에서는 ‘굳건했던’ 나라가 특히 새정권 들어 100여일만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논리다. 개혁의 종자를 뿌리려는데 벌써 흉년이라고 아우성이다.

-위기論 호들갑보다 인내 필요-

그러나 문제가 산적해 있고 갈 길이 먼 만큼이나 야블린스키적 낙관론은 우리의 경우에도 유효하다. 먼 길을 가는 데 필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인내심은커녕 입만 열면 위기와 파탄을 외우는 것은 반지성주의나 요즘 인기용어로 등장한 포퓰리즘의 소산일 뿐이다. 그 무절제한 언설의 뒷전에는 자기이익이란 요소가 숨어 있다. 우려스런 것은 이런 얼치기 정치인들이나 반지성적 지식인들의 호들갑이 제법 전염력이 높다는 점이다. 탁월한 정치철학을 가졌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가 좌절해야 했던 주된 이유로 러시아의 네오 스탈리니스트와 극우 민족주의자 할 것 없이 총단결해 개혁에 저항했고, 그 흔들기에 휘둘려 나중 고르바초프마저 방향성을 상실했던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들 극좌·극우가 저항하며 내놓은 논리들은 현란했지만 그 결정적 모티프는 역시 자기이익이었다.

자기이익만이 모티프가 되는 사회는 살맛나는 사회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지향돼야 할 시민사회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이다. 정말로 나라를 흔드는 게 누구인지, 개탄스런 것은 과연 무엇인지 찬찬히 살펴보고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얼음 밑으로도 강은 흐른다”.(리투아니아 민요에서)  〈김철웅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