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이달 초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주민등록 인구는 5182만9023명으로 2019년(5184만9861명)에 비해 2만838명 줄었다고 발표했다. 인구 감소는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인구증가율 마이너스, 원인은 무엇인가.
베이비붐 세대인 필자는 우선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성장기인 1970년대 일상적으로 접했던 건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독려 구호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심각한 저출산 기조가 슬슬 문제시되더니 급기야 ‘인구 절벽’까지 운위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인구 절벽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2020년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출생자가 사망자 수를 밑돌아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데드크로스'가 나타났다. 사진은 4일 경기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의 모습. /뉴시스
그러다 보니 이를 우울한 뉴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일부 지방에서 제기하는 농촌 소멸론을 넘어, 대한민국 소멸까지 우려된다고 극언하기도 한다.
10년 빨라진 인구 데드크로스
호들갑을 떨 게 아니라 문제를 차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인구 데드크로스(출생자보다 사망자가 많아지는 현상)가 처음 발생한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하나. 지난해 출생자 수는 27만5815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반면 사망자는 30만7764명으로 집계됐다. 2016년 자료를 검색하다 우리나라 인구 감소가 현실화하는 시기가 2031년부터일 것이라는 전망과 마주쳤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이보다 10년이나 빨리 왔다. 데드크로스가 이처럼 빨리 온 것은 출산율이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위기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는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합계 출산율이다. 이미 2015년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1.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지금은 어떨까. 지난해 2·3분기 0.84명으로 다시 떨어졌다. 초저출산이다. 여기서 멈출까. 0.84명은 저혼인·저출산이라는 코로나19 충격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일부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인 2022년 합계 출산율은 0.7명대로 더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독신세' 만든 로마황제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 사회 전반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생산과 소비가 위축돼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성장률은 하락한다. 재정수입이 줄면서 공적연금은 물론 보건·의료 복지 재원이 고갈되는 속도가 빨라진다. 기업투자도 감소한다. 납세와 국방마저 흔들릴 수 있다.
인구가 영토, 자원과 함께 국력의 기본 요소란 인식은 역사가 길다. 아우구스투스 로마 황제는 로마에 출산율 저하 현상이 나타나자 미혼여성들에게 ‘독신세’를 부과하는 등 출산장려책을 썼다. 국력의 쇠퇴를 우려한 것이다. 이 제도는 300년간 계속되면서 출산율 유지에 공헌했고 로마 인구의 안정적 성장은 ‘팍스 로마나’의 기초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노무현정부 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 2006년 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위원회는 지난해 12월 4차까지 5년 주기로 기본계획을 내놓았는데 골자는 아동수당·영아수당 신설을 통해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었다.
2006년부터 올해까지 15년간 정부가 저출산을 타개하기 위해 투입한 예산은 225조3000억 원에 이른다. 2006년 2조1000억 원에서 매년 늘어 2020년에는 40조2000억 원이나 됐다. 이렇게 돈을 쏟아붓고도 결국 인구감소를 막지 못했고 합계 출산율은 0명대까지 떨어졌다. 목표와는 거꾸로 된 결과가 나온 것은 어째서인가.
"저출산을 아젠다로 삼는 정치인 없어"
명목상 예산은 늘었지만 출산과 돌봄 등 저출산과 관련한 직접예산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고용이나 주거 등 간접지원이 대부분이란 것이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직접예산을 비교하면 OECD 회원국 평균이 국내총생산(GDP)의 2.4%인데 비해 우리는 2019년 1.48%밖에 안 된다”고 저출산고령사회위 관계자는 말한다. 이와 관련해 서울여대 정재훈 교수(사회복지학)는 2017년 “저출산 기본계획 시행 10여 년 간 예산 규모 100조의 절반은 정부 일반예산을 포함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은 적이 있다.
정 교수는 또 저출산고령사회위 홈페이지에 실린 칼럼에서 “최근 저출산을 자신의 아젠다로 삼으려는 비중 있는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당장 효과가 없는 주제를 언급하는 것은 매우 큰 정치적 부담이 된다고 풀이했다. 2021.01.1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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