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뉴스다. 덕분에 다른 소식들, 특히 총선을 두 달 남겨둔 정치권 뉴스는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건 코로나 바이러스 탓만도 아니다. 동아일보는 며칠 전 ‘원내정당 10개…비전·가치 대신 정략·꼼수 판치는 후진 정치’란 사설에서 “원내정당의 이합집산이 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념대결을 넘어서는 정책이나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런 정치판이지만 의미 있고 신선한 뉴스도 가끔은 있다. 그런 것으로 필자는 최고임금제 도입에 관한 뉴스를 꼽고 싶다. 정의당은 지난달 29일 올해 총선 3호 공약으로 최고임금제를 발표했다. 심각한 임금 불평등 해소를 위해 국회의원-공공기관-민간기업의 최고임금을 최저임금과 연동시키는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현재 최저임금의 7.3배인 국회의원 연간 세비(1억5176만원)는 최저임금의 5배로 제한하며, 공공기관은 최저임금의 7배, 민간기업은 최저임금의 30배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픽사베이  

정의당에 따르면 CJ제일제당 손경식 대표이사의 임금(연봉)은 88억7,000만원으로 최저임금의 469배에 달한다. 삼성전자 권오현 회장은 70억3,000만원으로 최저임금의 372배, CJ제일제당 이재현 회장은 64억9,000만원으로 344배에 이른다. 또 50대 기업 등기 임원의 평균임금은 13억2,000만원으로 최저임금과 70배 차이가 난다. 

최저임금제는 알지만 최고임금제는 생소하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임금제도 뜬금없이 나온 게 아니다. 20대 국회 초기인 2016년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대기업 임직원의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를 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살찐 고양이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4년째 국회에서 발이 묶여있는 상태다. ‘거대 정당’들의 외면으로 심사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이 정의당의 설명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2015년 고위 공직자의 급여 수준을 가구중위소득의 1.5배로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한 적도 있는 것을 보면 거대 정당들도 꽉 막혀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 사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일었다. 최고임금 조례 제정의 확산이다. 지난해 5월 부산시 의회가 처음으로 공공기관 임원 보수기준에 관한 조례를 곡절 끝에 통과시켜 시행 중이다. 그 뒤 경기, 울산, 경남, 전북에서 비슷한 조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서울시 의회에서는 지난해 상임위에서 2차례나 심사가 보류됐다. 민주당 시의원들이 압도적 다수인 시의회 집행부가 시장의 예산 편성 권한 침해 등 이유를 들어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지방의회의 이런 움직임은 긍정적이지만 분명한 한계도 있다. 지자체 산하 기관 임직원 보수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중앙정부 산하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 임직원 보수에 영향을 미치려면 정부와 국회가 나서 최고임금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말한다. 

【서울=뉴시스】2019년 6월 19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알바노조와 라이더유니온, 투기자본감시센터 등으로 구성된 1:10운동본부 회원들이 최고임금위원회 만들자 청와대 국민청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고임금제 적용 대상 가운데 특히 국회의원들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6월 재미있는 여론 조사가 나왔다. YTN이 리얼미터에 의뢰한 조사에 따르면 ‘국회의원에 대한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자’에 찬성하는 유권자가 80.8%나 된다. 이 원칙을 따르면 대부분 국회의원들은 수당을 대폭 반납해야 한다. 법안 처리율이 34.7%로 역대 최저였던 19대 국회는 9,800개 계류 법안이 2016년 5월 29일자로 자동 폐기되었다. 20대 국회도 1만5,000건이 오는 5월 자동 폐기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도 의원들에게는 연간 1인당 약 7억원이 소요되고 있다. 월급과 수당, 입법활동비, 보좌관 비용 등을 포함하면 그렇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일하지 않는 의원에 대한 압박이 강하다고 한다. 프랑스는 의원이 월 3회 이상 불출석하면 의정활동비 25%가 삭감된다. 게으른 의원에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한다는 것. 상상만으로도 통쾌한 일이다. 

그러나 도입 당위성을 논리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경제민주화 조항으로 알려진 헌법 119조 2항은 최고임금제의 훌륭한 근거 조항이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스위스에서는 2013년 11월 기업 최고경영자 임금을 최저임금의 12배로 제한하는 내용의 ‘1:12 이니셔티브’ 국민투표가 실시된 적이 있다. 결과는 65.3%가 반대, 찬성은 34.7%에 그쳐 부결됐다. 스위스 정부와 재계가 경제 발전과 외국인 투자를 저해하게 될 것이라는 등 이유를 내세운 게 먹혀든 것이다. 이렇듯 우리보다 훨씬 양극화가 덜한 스위스에서도 최고임금제 도입은 어려웠다. 우리는 어떨까. 험난할 것이다. 그럼에도 가야 할 길인 건 맞다. 2020.02.08 08:34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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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필자는 구 동독에 가서 환경오염 실태를 현지 취재한 적이 있다. 동독에 주둔해온 구 소련군 기지가 대상이었다. 기사는 ‘군사폐기물 오염, 중병 앓는 구동독’이란 제목으로 1992년 4월 14일자 신문에 실렸다. 당시 르포 일부를 소개한다.

“(베를린을 둘러싸고 있는 브란덴부르크) 주도인 포츠담 근교의 달고프 소련군 기지는 문자 그대로 폐허였다. 이미 소련군이 철수해 버린 이 기지의 곳곳에는 폐윤활유가 흘러나오는 드럼통들을 비롯해 폐타이어, 폐차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환경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과거 ‘사회주의 종주국’의 점령군들이 지난해 황황히 철수하면서 남겨놓은 잔해들이었다.”

기지 내 광활한 공터에 쌓여있던 폐타이어 더미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1945년 점령군으로 진주해 최고 50만 명에 이르던 동독 주둔 소련군은 1994년 8월 완전 철수했다.

독일 포츠담 근교 달고프의 구소련군 기지에 방치돼 있던 폐타이어들. 필자가 현지 취재해 1992년 4월 14일자 경향신문에 실렸다. /사진 남주환 기자

거의 30년 전 취재가 떠오른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달 한국과 미국이 폐쇄된 채 방치된 미군기지 4곳을 즉각 반환하는 데 합의했고, 이를 계기로 다시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4개 기지는 인천 부평의 캠프 마켓, 경기 동두천의 캠프 호비 사격장, 강원 원주의 캠프 이글과 캠프 롱이다. 이 기지들은 2009~2011년 폐쇄돼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른 반환 절차가 시작됐다.

그러나 순탄치 않았다. 환경오염 책임과 정화 비용을 두고 한·미 간 이견이 컸다. 4개 기지는 유류·중금속 등으로 오염된 것으로 파악됐고, 특히 부평 캠프 마켓에선 발암물질 다이옥신이 검출됐다. 녹색연합이 2018년 말 펴 낸 ‘주한미군기지 환경문제 보고서’에 그 자세한 내용이 있다. 

보고서를 보면 2017년 10월 환경부는 반환협상 중인 부평 미군기지 내부의 환경조사자료 일부를 공개했다. 그 내용은 토양에서 다이옥신류, 유류, 중금속, 테트라클로로에틸렌, 폴리클로리네이티드비페닐 등의 오염이 확인됐고, 지하수에서도 상당량의 오염물질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다이옥신류는 33개 조사지점 중 7개 지점의 토양에서 1,000pg-TEQ/g(독성등가환산농도)를 초과했으며, 최고농도는 10,327pg-TEQ/g까지 확인되었다. 다이옥신이 검출된 깊이도 표토뿐 아니라 1~3m 중간토, 3~5m 하부토에서까지 검출됐다. 물에 거의 녹지 않는 다이옥신의 특성상 중간토와 하부토에서 다량 검출됐다는 것은 고엽제나 PCBs(독성물질인 폴리염화바이페닐)를 매립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토양환경보전법상 다이옥신은 토양오염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정화목표가 없으며 정화한 사례도 전무하다. 부평 미군기지 내부 다이옥신 정화목표와 방법이 전국의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신중하고 깊이 있는 논의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2019년 12월 11일 반환받았다고 발표한 4개 주한미군 기지 중 하나인 인천 부평구의 캠프 마켓 일대.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갔다. 이번에도 ‘미국 측과의 이견’으로 정화 비용을 우리 정부가 부담키로 했다. 정화 비용은 캠프 마켓의 A구역 773억 원, B구역 75억 원, 캠프 롱 200억 원, 캠프 호비 72억 원, 캠프 이글 20억 원 등 약 1100억 원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한·미가 반환에 합의한 80개 미군기지 가운데 반환이 완료된 곳은 54개이다. 이 가운데 25개 기지에서 오염이 확인됐지만, 미국이 정화를 하거나 비용을 부담한 사례는 없다.

어째서일까. 현행 SOFA 4조 1항에는 ‘시설과 구역을 반환할 때 미국 정부는 원상회복해야 할 의무가 없다’고 돼 있다. 이것이 미군이 떠나면서 그동안 마구 버린 폐유·중금속 등 정화비용을 한국에 떠안기는 근거가 됐다. 대신 미국이 내세우는 것은 SOFA 양해각서에 들어있는 KISE원칙 조항이다. KISE는 ‘인간 건강에 대한 알려진, 임박한, 실질적, 위험’이란 영어 약자다. KISE를 초래하는 오염이라면 신속하게 치유를 수행한다는 합의다.

고약한 것은 이 원칙을 자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발암물질의 경우 한국은 ‘약 25년 동안 노출됐을 때 1만명 중 1명에게 암이 발생하는 위해도’로 본다. 그러나 미국은 ‘3~5년 내 발병이 확실한 수준의 오염이라고 주한 미군사령관이 결정한 경우에만 치유한다’는 입장이다. 제도적으로 이런 불평등한 SOFA의 독소조항들을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미국의 선의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험칙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한다.

좀 더 근본적 이유는 심리적인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구 동독 주둔 소련군이나 주한미군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련군이 폐수와 폐유를 배출해 상수원을 오염시킨 것이나 주한미군이 부대와 인근 환경을 마구 오염시켜 온 것이나 공통적인 것이 있다. 바로 점령군의 심리다. ‘나라를 지켜주는데 그깟 환경오염이 대수냐’는 생각이다.

녹색연합은 성명에서 “미국 측은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검출돼도 KISE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오염 정화를 거부해왔다”며 “그런데도 기지 반환 이후에 미국 측과 협상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은 정부만의 대단한 착각”이라고 말했다. 2020.01.09 10:07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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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자유한국당은 보수정당이다. 당 강령에도 명시돼 있다. 강령에는 “산업화의 주역인 보수정당으로서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성장 전략을 모색한다”, “현재에 머물지 않고 시대정신을 끊임없이 받아들여 변화하고 개혁하는 정의로운 보수를 지향한다”고 돼 있다.

보수란 무엇인가. 급격한 변화를 반대하고 도덕과 전통을 중시하는 삶의 태도이다. 변화를 무조건 거부한다는 뜻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옛 제도나 풍습을 그대로 지키는 것을 수구(守舊)라 한다. 한국당 강령도 이 점을 의식한 듯하다. 자신을 보수정당이라고 규정하면서도 변화와 개혁이란 조건을 달았다. 스스로도 보수와 수구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쉽게 말해 ‘꼴통보수’가 아니란 것이다.

자유한국당 3선인 김세연 의원이 17일 국회 정론관에서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한국당 해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급격한 변화를 경계하는 건 맞지만 필요할 땐 담대한 개혁에 나서는 게 진정한 보수다. 링컨, 비스마르크, 처칠, 드골 등 역사적으로 평가받는 보수 정치인들이 그랬다. 그런데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말이 역시 맞는 것 같다. 지금 돌아가는 한국당 분위기가 ‘개혁적 보수’와는 영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나온 당내 반응을 보면 그렇다. 최근 김 의원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당 지도부는 물론 의원 전체가 총사퇴하고 당을 해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당은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는 말도 했다. 그는 “한국당은 수명을 다했다. 이 당으로는 대선 승리는커녕 총선 승리도 이뤄낼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수구화한 한국당의 한계를 엄중히 평가하고 기득권 포기를 통한 보수의 혁신을 주문한 것이다. 현 지도부와 의원들이 물러나고 다음 세대가 전면에 나서 새로운 정신을 갖춘, 진정한 보수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는 “총선에서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말로 응답했다. 물러나는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 게 단식 농성이었다.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는 선거법과 검찰개혁법을 철회하란 요구다. 본인이야 비장하겠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뜬금없는 데다 기득권 지키기로 비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7일 단식 농성 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홈페이지

의원들도 대다수가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다. A 의원은 “불출마는 (재력가인) 김 의원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가만있는 다선 의원들이 무슨 죄냐”라고 말했다. B 의원은 “새 집을 짓자며 떠났다 돌아온 사람이 집에 불을 지르고 있다”고 했고, C 의원은 “불출마 선언해놓고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직은 왜 유지하느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당내 몇 안 되는 소장 개혁파인 김 의원은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주장을 편 적이 있다. 김 의원은 지난 4월 국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한국당이 극단적으로 우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중도 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중간 투표자를 안을 수 있어야 집권이 가능하다”며 “건전한 보수정당으로서 철학과 이념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지금 한국당은 꼰대정당이란 이미지만 남아있다”고도 했다.

통계상 그것도 사실이다. 한국당 의원 108명 중 60세 이상이 59명으로 54.6%나 된다. 반면 20대는 없고, 30대는 신보라 의원 하나이며, 40대도 김세연 김성원 전희경 의원 3명에 불과하다. 전국 유권자 4307만 명 가운데 2040대는 53.7%에 달한다. 그런데 한국당 2040대 의원은 4명으로 3.7%에 그친다. ‘늙은 한국당’은 2040세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서 20대의 한국당 지지율은 11%, 30대는 12%, 40대는 13%였다. 민주당은 20대 40%, 30대 46%, 40대 51%로 큰 차이가 난다.

한국당에 시대착오적 색깔론이 온존하고 있는 이유도 당의 노쇠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설명이 가능하다. 오랫동안 계속돼 온 계파갈등과 그로 인한 ‘계파학살’로 한국당은 내부 비판을 허용하지 못하는 획일적 정당이 됐다. 다양성이 현저히 약화된 것이다. 그런 상황은 외부 반대 세력을 너무 쉽게 종북으로, 빨갱이로 몰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정권 성격에 따라 진보적 경제정책과 유화적 대북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당에서는 이게 거두절미하고 종북 좌파 정책이 돼버린다. 색깔론 의존이 병적으로 체질화한 탓이다. 손쉬운 색깔론을 놔두고 무엇 하러 돌아가느냐는 생각에 젖어있다.

김세연 의원은 모처럼 보수파에게 벼락치듯 울리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찻잔 속 태풍’으로 소멸할 듯하다. 한국당 쇄신은 물 건너갔으며, 색깔론 등 냉전적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의미다. 2019.11.29 09:47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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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과 빈곤에 관한 뉴스가 일상적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옛날에도 그랬던 것 같다.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쓴 <사회문제의 경제학>을 보자. “브룩클린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에서, 태어난 지 이틀 된 아기의 사망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배심원단이 소집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지저분한 방에는 부서진 의자, 형편없는 침대, 빈 위스키병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에는 죽은 아기의 엄마인 소녀가 흐트러진 자세로 누워 있었고, 의자에는 아기 아빠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도대체 경찰관, 경찰서, 빈민구호소, 자선단체는 무얼 했단 말인가?”

저자는 우리가 매일 신문에서 이와 비슷한, 아니 더 나쁜 기사를 접한다고 썼다. 책이 나온 건 1883년이다. 산업화 초기로 컴퓨터·TV는커녕 라디오도 보급되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어제 일어난 일 같다.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연상시키는 내용도 있다. “철도왕들은 지선 철도, 운송회사, 역마차 노선, 증기선 항로까지 지배하게 되며, 소도시를 만들거나 없앨 수도 있고, 운송이 필요한 사업을 하는 사람의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해서” 돈을 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빈곤 실태는 어떤가. 옛날 미국에 비해 절대적 빈곤층 비율이 줄어든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엔 없었던 개념, 즉 양극화와 이에 따른 상대적 불평등과 박탈감은 훨씬 심해졌을 것이다. 엊그제 보도를 보면 지난해 주택 보유 상위 1%(12만 9900명)가 보유한 주택 수는 91만 채였다. 2008년(10만 5800명, 36만 7000채)보다 54만 3000채 늘었다. 이에 따라 상위 1%의 1인당 보유 주택 수는 평균 7채로 10년 전에 비해 두 배나 증가했다. 상위 10%가 보유한 주택도 450만 8000채로 10년 전(242만 8700채)보다 207만 9300채 증가했다.

집값 안정과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해 정부가 신도시 등 주택 공급을 늘려도 결국 혜택은 다주택자에게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사자인 경실련은 “다주택자들의 자산 가치는 크게 늘어난 반면 무주택자들은 내 집 마련 기회를 박탈당했고 집값 상승을 뒤따라간 전·월세 가격 부담으로 빚에 시달리면서 자산 격차가 더욱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가계소득 양극화도 역대 최악 수준으로 심해졌다. 지난달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4분기 소득 5분위 배율(최하위 20%와 최상위 20%의 소득 비율)은 5.3을 기록했다. 이 값이 클수록 소득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다. 최하위 20%인 1분위의 소득은 작년 2분기보다 0.04%(월 600원) 늘어난 132만 5000원에 그쳤다. 반면 최상위인 5분위 소득은 942만 6000원으로 전년 동기(913만 5000원) 대비 3.2% 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많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18 자살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자살 사망연도 기준 2년 연속 건강보험 의료급여 대상이었던 계층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66.4명으로 평균 자살률(2017년 기준 24.3명)의 2.73배에 달했다. 의료급여는 기초생활수급권자 등에 대해 본인부담금을 국가가 부담해주는 제도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부론' 발간 국민보고대회에서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하고 있다. 2019.09.22./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그런 점에서 자유한국당이 얼마 전 내놓은 ‘민부론’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정부 여당이 추진해온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약발이 잘 먹혀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제 1야당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득주도성장론의 대안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황교안 대표는 이날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한 정책이란 것을 되풀이 강조하고, 경제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며 ‘특효약’을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민부론은 현 정부의 국가주도 경제를 민간주도의 자유시장 경제로 전환해 203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달성, 2030년까지 가구당 연간 소득 1억 원, 2030년까지 중산층 비율 70% 달성을 골자로 한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개인과 가계에 우선적으로 귀속되도록 해 국민이 부자가 되는 길이 ‘민부론’의 핵심이라며 국부 경제에서 민부(民富)의 경제로 경제활성화, 국가주도 경쟁력에서 민주도 경쟁력 전환을 제시했다. 그러나 민부론은 해묵은 시장근본주의를 다른 말로 포장한 것일 뿐이었다. 또 ‘어떻게’라는 설명이 빠져 구체성이 없었다. ‘안티 문재인’에 힘을 쏟다가 알맹이를 빠뜨린 것이다.

황 대표는 “심각한 천민사회주의가 대한민국을 중독 시키고 있다”며 예의 색깔론도 빼먹지 않았다. 근거 제시는 없었다. 천민자본주의는 들어봤어도 천민사회주의는 금시초문이다. 시대착오적 색깔론을 새것인 척 위장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란 생각이 든다.  2019.09.30 11:02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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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우리 당의 기본 정치철학이자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다.”(이해찬 대표)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고도 절실한 명제다.”(박광온 최고위원)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이 연 민주당 소속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참석자들은 ‘차질 없는 지방분권 추진’ 의지를 다졌다. 민주당 정부만 그런 건 아니다. 역대 정부는 수도권 인구분산과 균형발전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고심해 왔다. 그러나 그저 말뿐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이런 말을 구두선(口頭禪)이라 한다.

1960년대 서울 광화문 네거리

증거는 차고 넘친다. 지난 21일 한겨레신문은 ‘극에 달한 수도권 쏠림…총인구의 50% 첫 돌파’라고 보도했다. 통계청이 최인호 의원(민주)에게 제출한 ‘최근 10년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인구 추이’를 보면 7월 1일 기준으로 한국 인구는 5170만9000명인데 수도권 인구는 2584만4000명(49.98%), 지방 인구는 2586만5000명(50.02%)이다. 지방 인구가 2만1000명(0.04%) 많을 뿐이다. 이 전세는 8월이나 9월 중 역전될 것 같다.

서울·인천·경기 지역인 수도권은 국토의 11.8%인데 이미 인구 절반이 몰려 산다. 통계청 계산으로는 2030년 전후로 한국의 인구는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이와 관계없이 수도권 인구 비중은 늘어난다.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다. 수도권 과밀화에 반비례해 지방 대도시 인구는 줄고 있다. 제2도시인 부산은 2010년 356만8000명이던 것이 2018년 344만1000명으로 줄었다. 대구, 광주, 대전도 추세는 마찬가지다. 인천만이 275만8000명에서 295만5000명으로 늘었다. 지방 중소도시들은 소멸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미 2016년 전국 지자체의 30%가량이 ‘소멸 위험 지역’이란 보도가 나갔다.

오늘날 서울의 모습

신도시를 마구 건설하는 정책도 수도권 집중을 부추기고 있다. 수도권 1기 신도시는 분당·일산 등 5곳에, 2기 신도시는 판교·파주 운정 등 10곳에 들어섰다. 현정부도 5곳에 3기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모두 20곳이다. 인구와 돈이 몰리든 말든 이런 정책을 쓰면서도 말로는 수도권 인구분산과 균형발전에 노력한다고 하니 이런 모순이 없다.

작가 이호철이 동아일보에 ‘서울은 만원이다’란 소설을 연재한 게 1966년이었다. 소설 속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서울은 넓다. 아홉 개의 구(區)에 가(街), 동(洞)이 대충 잡아서 380개나 된다. 이렇게 넓은 서울도 370만 명이 정작 살아보면 여간 좁은 곳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이르는 곳마다 꽉꽉 차 있다.” 그 시절에도 서울은 만원이었다. 수치만 늘어났을 뿐(구가 25개, 행정동이 424개, 인구가 975만 명이 됐다) 서울은 그때나 지금이나 꽉꽉 차 있다.

서울 인구는 1992년 1090만 명을 정점으로 하향세인데, 아까 말한 대로 경기도에 대규모 신도시들을 건설한 탓이었다. 초만원인 서울 인구가 수도권으로 흘러넘친 셈이다. 덕분에 경기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강준만 교수는 책 ‘바벨탑 공화국’(2019)에서 풍부한 사례를 동원해 서울의 초집중화 폐해를 분석하는데, 그중 이런 것도 있다. “다산 정약용은 위대한 선구자요 개혁가였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인물조차 죽기 전 자녀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 가지 말고 버텨야 하며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며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서울 인구는 조선 초에 10만 명, 조선 말엔 20만 명이었지만, 1988년 1000만 명을 돌파했고 여타 수도권을 합해 전체 인구의 절반을 거느리게 됐다며 “정약용의 경고는 놀라운 선견지명”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중앙 지향성은 뿌리가 깊다는 설명이다.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란 속담도 떠오른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나빠지고 있다는 증거 중의 하나는 수도권으로의 중앙 집중화가 더욱 심화되었다는 사실이다”라고 개탄한다. 책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에서다. 그는 “비민주적 사회의 특징은 정치·경제·군사·문화적 권력과 영향력이 단일 중심으로 응집되어 있다는 것”이라면서 “그렇다면 국토의 0.6%에 불과한 서울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면서 모든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게 된 형국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수도권 초집중을 막으려면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실천하는 것 뿐, 무슨 기발한 정책은 없다. 그런데 ‘서울은 만원이다’란 소설이 나온 게 53년 전이다. 그냥 체념하고 살아야 할까.  2019.08.28 09:58

 

 

 

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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