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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통일부 폐지론, 이준석은 ‘아나키스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여성가족부·통일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뜬금없고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 이유를 두 측면에서 살펴보자. 첫째는 문제 제기 방식의 가벼움이다. 이 대표는 라디오와 TV에 나와 이 주장을 폈다. CBS 라디오에서는 “보수 쪽 진영은 원래 작은 정부론을 다룬다. 현재 정부 부처가 17~18개 있는데 다른 나라에 비하면 좀 많다. 여성가족부나 통일부 이런 것들은 없애자”고 말했다. 앞서 SBS 인터뷰에서도 여가부 폐지 목소리를 냈다.

 

 자신이 보기에 성과가 미흡하다고 아예 없애버리자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뿐더러 정부 조직 존폐를 이렇듯 가볍게 제기하는 것도 문제다. 조직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면 치밀한 당내외 여론 수렴을 거쳐 정책화해야지 라디오나 SNS에서 툭 던질 일은 아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6월 13일 따릉이를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둘째는 그 내용이다. 방식의 가벼움은 논외로 치고라도 여가부·통일부 해체 주장이 얼마나 타당하냐는 것이다. 먼저 여가부의 경우를 보자.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 3월 발표한 ‘글로벌 성 격차 2021(Global Gender Gap Report 2021)’에 따르면 남녀평등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102위를 기록했다. 조사 대상 156개국 가운데 바닥권에 머물고 있다.

 

 취업 형태, 임금 수준, 승진 기회 등 각종 지표들은 한국 사회의 여성이 넘어야 할 차별의 벽이 엄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대표는 여가부 폐지 주장부터 할 게 아니라 이런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기존 여가부의 업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대안부터 제시하는 게 순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여가부 폐지는 옳지 않고, 추가적인 차별 시정을 위해 확대 재편은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능을 키워야지 왜 없애나”라고 반박한 건 이런 맥락이다

 

 통일부 폐지론도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나라가 사실상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란 점을 유념할 때 한국에서 나오는 통일부 폐지론은 ‘해외토픽감’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재 분단국가로는 중국과 대만, 키프로스와 북키프로스도 있으나 첨예한 대립 상황은 우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수장을 지낸 정세현 전 장관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 분단을 극복하고 해소할 기관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주요 정책이나 부처는 나라마다 다양하다. 그 나라가 처한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은 “대한민국이 작은 정부를 지향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분단의 고통을 해소하는 업무를 ‘외국’을 상대로 교섭행위를 전담하는 외교부에 통합시키자는 말은 (통일부를) 없애자는 얘기보다 더 무식한 말이다”고 했다.

 

 필자는 이 대표의 부처 폐지 주장을 보며 엉뚱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혹시 이 대표가 아나키스트 아닐까?’라는. 아나키즘은 개인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고 이에 반대되는 일체의 현상이나 태도를 거부한다. 국가권력 및 모든 사회적 권력을 부정하는 건 당연하다. 절대적 자유가 행해지는 사회를 실현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 대표 선거 당시 ‘이대남(20대 남성)’의 분노와 박탈감을 부추겨 승리했다는 평가와 평소 드러내는 능력주의적, 경쟁만능의 사고를 감안하면 이런 호기심은 너무 나간 것 같다.

 

  그보다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진단이 와닿는다. 그는 일전 SNS에 이렇게 꼬집었다. “이준석이 여성부 폐지를 내걸고 뻘짓하다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니, 출구전략으로 애먼 통일부를 끌어들여 철 지난 ‘작은 정부’ 타령 모드로 갈아탔다”며 “(여가부 폐지가) 여성혐오 코드가 아니라 신유주의 코드라고 변명하는 거다. 공부가 안 돼 있으니 뻘짓은 이미 프로그래밍 돼 있는 셈이다.”

 

 36세의 ‘0선’인 정치인 이준석이 보수 야당 대표로 선출됐을 때 반응은 한마디로 ‘기대’였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그랬다. 한 보수 신문은 “이준석 바람은 이 대표 개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국민의 요구다”란 사설을 썼다. 또 한 진보 매체는 낡은 보수와의 완전한 단절을 주문했다. 이 땅의 보수 정당들은 극단적 반공·반북주의, 맹목적 친미, 색깔론 등 ‘보수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낡은 이념과 정책에 의존해왔다며 “이 대표가 진정한 변화를 시도한다면 이 문제들에서 명확한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대가 의구심으로 바뀌는 데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