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필자는 영국 작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의 소설 ‘하워즈 엔드’를 번역·출간한 적이 있다. 속표지의 ‘오직 연결하라(Only Connect)’는 특이한 제사(題辭)가 지금도 기억난다. 여기에 소설의 주제가 압축돼 있다. 작가는 성격과 출신, 가치관이 판이하게 다른 두 집안, 즉 세속적인 윌콕스가(家)와 이상을 추구하는 슐레겔가 남녀의 갈등과 화해를 정교한 필치로 그려냈다. 이는 스토리가 ‘대립으로부터 연결로’ 옮겨간다는 것을 암시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하워즈 엔드'(1992)의 한 장면. 헨리 윌콕스로 분한 앤서니 홉킨스(왼쪽)과 매거릿 슐레겔로 분한 엠마 톰슨. 두 집안 남녀의 대립과 ‘연결’을 정교한 필치로 그려냈다.
오래된 기억이 떠오른 건 최근 한 기사를 읽으면서다. 유엔 산하 환경재해 연구기관인 유엔대학 환경 및 인간안보연구소(UNU-EHS)는 지난 8일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보고서 제목이 ‘상호 연결된 재해 위험 2020/2021(Disaster Risks in an Interconnected World)’였다. 소설이나 보고서나 ‘연결’을 강조하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보고서는 북극 빙하를 녹인 폭염과 미국 텍사스에 대규모 정전 사태를 불러일으킨 한파, 브라질 아마존에서 일어난 대형 산불에서 중국의 주걱철갑상어 멸종 등 지난 1년간 발생한 10가지 굵직한 재난을 분석했다. 보고서가 다룬 10개 재난은 아마존 산불, 북극 폭염, 텍사스 한파, 코로나19 대유행, 사이클론 암판, 아프리카 사막 메뚜기떼, 레바논 베이루트 폭발 사고, 베트남 홍수, 양쯔강 주걱철갑상어 멸종,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파괴 등이다.
불에 탄 브라질 아마존/보고서 갈무리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전 세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발생한 별개의 재난들은 탄소 배출과 환경 파괴를 고리로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이었다. 더 압축하면 이렇다. “모든 재난은 연결돼 있다.”
목하 진행중인 코로나19 사례를 통해 재난의 연결 관계를 살펴보자. 근본적 발생 원인은 항상 인간에서 시작한다. 환경 파괴는 인간과 야생동물의 거리를 좁혀놓았다. 자연 서식지가 파괴되면 인간은 새로운 방식으로 야생동물과 가까워지는데 그건 그들이 지닌 질병과 가까워지는 것도 포함된다. 코로나19도 동물에서 비롯한 질병인데 동물 시장 등을 거쳐 인간에게 전달됐다. 인플루엔자, 에볼라, 에이즈, 사스도 마찬가지였다.
이 재난은 다른 재난과 결합해 더 큰 파괴적 결과를 가져온다. 방글라데시 남서부 순다르반 지역 주민 절반은 빈곤층이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덮치자 해외에서 일하던 많은 이들이 본국으로 돌아왔고, 사이클론 대피소에 수용됐다. 1999년 이후 가장 강력한 사이클론인 암판이 몰아쳤지만 주민들은 대피소를 기피했다. 사이클론은 6000개 1차 건강센터를 망가뜨렸고, 건강관리 시스템을 악화시켜 코로나 대유행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암판으로 130억 달러 피해, 49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유엔 보고서의 첫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무도 섬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우리 모두에게.” 이 대목은 묘한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은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란 기도시에서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 섬은 아니다.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한 부분이다. …어떤 이의 죽음은 나의 감소를 의미한다,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에.”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 봄부터 시작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하고 있다. 장사에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들 가운데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벌어지고 있다. 언제 코로나 시대가 끝날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 유엔 보고서도 코로나 종식에 관한 언급은 없다.
나는 역설적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어버리자거나 이른바 ‘정신 승리법’을 믿자는 게 아니다. 그것은 ‘오직 연결하라’는 정신을 실천하는 일이다.
코로나 장기화로 확인된 중요한 사실은 ‘연결되고 싶은 존재로서의 우리들’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모래알 같다던 현대인들이 얼마나 연결돼 살아왔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기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런 ‘연결’을 실천하고 있다.
장희숙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은 한 칼럼에서 “아이들 입에서 ‘학교 가고 싶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신기한 일이라며, 아이들이 그리워하는 것이 ‘학교’라기보다는 ‘커뮤니티’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직 연결하라’가 답이다.
2021.09.17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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