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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칼럼

[신문로] 기독교인의 정치와 신앙 사이

"황교안 대표는 독재정권에 부역한 공안검사였음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들은 언제까지나 독재자에게 부역한 ‘공안의 후예’로 기억할 것입니다." 며칠 전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사에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가 없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반발하자 일침을 가한 것이다.

황 대표는 28년 검사 기간 동안 대검 공안1·3과장, 서울지검 공안 2부장을 거쳤고,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펴내기도 한 공안통이다. 2005년 국정원·안기부 도청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2014년 법무부 장관 때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 과정에서 정부 대리인으로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

황 대표는 또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사법시험 합격 후 연수기간 중 야간 신학교에 편입했고 졸업 후 침례교회 전도사로 활동했다. 부산지검 동부지청 차장검사로 재직 중인 2004년 “재소자들을 기독교 정신으로 교화해야만 확실한 갱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글을 개신교 소식지에 기고하며 민영 교도소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은해사 봉축 법요식 참석한 황교안 대표(영천=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부처님오신날인 12일 오후 경북 영천시 은해사를 찾아 봉축 법요식에 참석하고 있다. 2019.5.12 mtkht@yna.co.kr

대표적 공안통이라거나 특정 종교에 독실한 신심이 있다는 사실이 국가 지도자로서 흠결이 되는 건 아니다. 다만 그것이 독선과 아집을 강화한다면 문제다. 신앙은 자유지만 세속국가의 정치를 종교적 계시와 혼동하면 안된다. 둘은 엄연히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기가 어렵다.

독실한 신심이 지도자 흠결은 안돼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좋은 모델이다. 9·11 테러를 겪으면서 그에게는 근본주의적 기독교관이 작동했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미국과 미국에 동조하는 국가는 선으로, 테러리스트와 미국에 반대하는 국가는 악으로 규정했다. 기독교 근본주의에는 이슬람 근본주의 못지않게 독선적·광신적인 성격이 있다. 실제로 부시는 “하느님이 알 카에다를 치라고 하셨고 나는 그들을 쳤다. 또 후세인을 치라고 하셨고 그렇게 했다”고 말한 것으로 이스라엘 신문 하레츠가 보도했다. 이렇게 전쟁에 신탁(神託)의 의미가 부여되면 맹신이 눈을 가리고 논리는 하찮은 게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신정(神政) 정치다. ‘신은 우리 편’이라는 철석같은 확신과 독선은 멀지 않다.

다른 예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 그는 서울 시장 때인 2005년 9월 청계천 복원사업 준공 감사예배를 열어 “청계천 복원은 보이지 않게 드린 무릎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고 이루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유사한 종교적 확신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왔다. 4대강사업저지 대책위원장이던 지관 스님은 “눈에 보이는 치적만 생각하는 것이 독선적 신앙을 보는 것 같다”며 “청계천 환상을 믿고 있기 때문에 논의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황 대표의 신앙은 이 전 대통령보다 ‘한 수 위’라고 여겨진다. 특히 공안통이란 이력이 그의 근본주의적 신앙을 강화해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신대 강인철 교수는 책 ‘한국의 개신교와 반공주의’에서 보수교회의 이념적 특징을 반공주의라고 지적한다. 그는 “민주화 이후 반공주의는 점진적 약화 내지 해체과정을 겪어왔지만, 개신교 반공주의는 결코 약화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강력해진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불렀으나

황 대표는 부처님오신날인 지난 12일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 열린 봉축법요식에 참석했지만 법요식 내내 합장을 하지 않았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시간에도 예법에 따른 반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기 부처를 목욕시키는 관불의식 때도 외빈 중 가장 먼저 호명됐으나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기념식에서는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일어나 주먹을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지난 2016년 박근혜정부의 총리로서 참석했을 때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정치인으로서 나름대로 변신을 꾀하는 것일까. 나는 황 대표가 ‘임을 위한…’의 경우는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자신이 신앙에서 후퇴하는 모습이라고 판단하는 행동은 앞으로도 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