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문학과 노래에 자주 등장한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비는 중요한 설정이다. 소설 마지막은 “나는 병원을 떠나 빗속을 걸어 호텔로 돌아왔다”로 끝난다. 하드보일드 문체의 대가는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아기를 낳다 숨지는 비극적 장면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비는 비극, 허무, 죽음을 상징했지만 작가는 그런 감정 표현을 절제하고 이 건조한 문장을 택했다.
김소월의 시 ‘왕십리’도 떠오른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여드레 스무 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시인이 구태여 계절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 비는 장맛비 같다. ‘가도 가도 비가 오는’ 왕십리에서 우리는 시가 노래하는 이별의 정한(情恨)에 공감한다.
비만큼 사람과 가깝고 정서에 영향을 주는 자연현상은 없다. 당연히 비의 정서를 담은 노래도 너무나 많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비처럼 음악처럼’(김현식·1986)의 멜로디가 흐를 때 우리는 아련한 옛 추억에 잠긴다. 김광석의 ‘사랑했지만’(1993)도 비에 관한 노래인데 접근법이 독특하다.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어/ 자욱하게 내려앉은 먼지 사이로/ 귓가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그대 음성 빗속으로 사라져버려….”
ⓒ픽사베이 |
비 노래가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수많은 노래가 이별에 관한 것인데, 비가 이별의 슬픔을 담기에 딱 좋기 때문이다.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이 피어오르는 건 화창한 날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 제격이다. 심수봉이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으로 시작하는 ‘그때 그 사람’(1978)을 불러 호소력을 인정받은 것도 진한 공감력 때문이다.
1982년 대학가요제 동상을 받은 우순실의 ‘잃어버린 우산’ 가사를 음미해 보자.
안개비가 하얗게 내리던 밤
그대 사는 작은 섬으로 나를 이끌던 날부터
그대 내겐 단 하나 우산이 되었지만
지금 빗속으로 걸어가는 나는 우산이 없어요
이젠 지나버린 이야기들이 내겐 꿈결 같지만
하얀 종이 위에 그릴 수 있는 작은 사랑이어라
…(하략)
가사와 멜로디, 화성적 아름다움이 뛰어난 노래다. 안개비가 내리던 밤, 같이 우산을 쓰자고 그가 제안하면서 사랑은 시작되었다…. 노래에서 안개비는 옛사랑의 추억을 일깨우는 중요한 소품이다.
최근 어떤 기사에서 이 ‘안개비’와 예기치 않게 조우했다. “인공강우 실험 과정에서 안개비가 형성되는 성과를 거두었다”는 기사였다. 지난달 말 정부는 서해상에서 항공기를 통해 ‘구름씨앗’을 뿌리는 인공강우 실험을 실시했다. 그런데 전남 영광 지역에 위치한 모바일 관측 차량에서 몇 분 동안 약한 안개비 현상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내 눈길이 ‘안개비’에 멎은 이유가 있다. 아하, 사람이 인공적으로 비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이렇게 안개비란 게 나타나는구나! 내 기존 관념의 틀 속에서 인공+강우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네모난 삼각형’처럼 도저한 형용모순이었다. 비에 대한, 낭만에 대한 배반이었다.
이런 형용모순적 상황을 초래한 장본인이 미세먼지다. 김광석이 부른 ‘사랑했지만’에도 먼지란 가사가 등장하긴 한다. 그러나 20여 년 전 당시만 해도 먼지는 전혀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꼽히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3839명에게 가장 불안을 느끼는 위험요소를 물어보았더니 ‘미세먼지 등과 같은 대기오염’이 3.46점(5점 만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경기침체’(3.38점), ‘고령화’(3.31점), ‘실업 및 빈곤’(3.27점), ‘북핵’(3.26점) 등을 제치고서였다. 최고의 걱정거리가 된 것이다.
인공강우 실험은 이렇게 심각해진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동안 국내에서 인공강우 실험은 가뭄 대비 등을 위해 수십 차례 실시됐으나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실험은 처음이었다. 빗물로 미세먼지를 씻어내 대기 중 농도를 낮춰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말 실시된 실험의 중간결과는 신통치 않다. 유의미한 강수 관측이 없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상세분석 결과는 이달 말 발표될 것이라 한다.
이번 실험에 대해서는 결과에 상관없이 걸음마 단계인 인공강우 실험을 뚝심 있게 계속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반면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도시 미세먼지의 주요 원천은 경유차”라면서 “경유차를 유지하거나 늘리면서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건 연목구어”라고 말한다. 그가 인공강우를 직접 거론한 건 아니나,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분명한 건 어떤 선택을 하건 우리가 자초한 일이란 사실이다. 미세먼지도, 인공강우도 모두 인간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결과인 것이다. 묵직한 메시지다. /2019.02.1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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