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위상이 만만치 않은 기세로 오르고 있다. 옛날과 비교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을 갖게 한다. 한국 정치에서 옛날은 까마득한 과거나 몇 해 전이 아니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은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중 대구·경북에서만 승리했다. 국회의원 재·보선 12곳 중에서 민주당은 후보를 낸 11곳에서 승리했다. 많은 신문들이 ‘보수정치 궤멸’이란 제목을 달았다.
한국당은 ‘TK 자민련’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한국당 지지율은 당시 11% 안팎이었다(민주당은 53%). 그러나 최근 지지율이 크게 올라 21%였다(민주당은 38%). 지난 4·3 보궐선거에서 한국당 후보는 통영 고성에서 대승했고, 고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 성산에서는 줄곳 앞서다 정의당 후보에 막판 역전패했다.
한국당의 이런 기세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돌아온’ 권토중래(捲土重來)의 모습이다. 문제는 이게 내년 4·15 총선과 2022년 3·9 대선까지 유지될 것인가다. 그래서 한국당이 정권을 탈환할 수 있을까다. 이를 예측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이지만, 한국당에 몇 가지 조언은 할 수 있다.
이 칼럼의 제목 ‘올드 보수…’는 한국당이 구태를 못 벗어나면 집권은 물 건너간다는 뜻이다. 한데 그 구태 중에서도 구태가 바로 색깔론이다. 나는 색깔론을 한국정치의 대표적 적폐로 규정하고 그것에 ‘외과적 타격(surgical strike)’을 가하고자 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보수정당에서 빨갱이, 종북, 좌파가 일상적 언어가 됐는가. 수많은 억울한 죽음을 ‘빨갱이’란 단어 하나로 정당화한 독재 시절의 역사로는 불충분한가.
황교안 대표는 지난 2월 취임 후 첫 의원총회에서 “문재인 정권의 좌파독재로 경제도, 안보도, 민생도 모두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4일 당 최고위원 회의에선 “민노총이 국정농단을 일삼아 대한민국은 민주노총공화국이 됐다”고 비난했다. 나는 황 대표를 볼 때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뺨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란 느낌을 받는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8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장관 임명을 비판하고 있다. /한국일보 오대근 기자
구태를 못 버린 탓이라고 했지만, 이 당의 색깔론 의존증은 습관성인 것 같다. 별다른 고민 없이 툭하면 내놓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한국당은 새해 예산안에 반대하며 국회에서 손팻말 시위를 벌였는데, 내건 문구가 ‘사회주의 예산 반대’였다. 아동수당 도입과 기초노령연금 인상 등이 대표사례로 지목됐다. 한데 이 예산들은 여야 협상과정에서 한국당도 이듬해 9월부터 지급키로 합의했던 것이다.
이런 비판들은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이들은 중요한 시점마다 먼지 쌓인 색깔론을 꺼내든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색깔론 장사로 톡톡한 재미를 보면서 그것에 의존하는 습관이 거의 병적으로 체질화한 것이다. 손쉬운 색깔론 놔두고 무엇하러 돌아가느냐는 생각에 젖어있다. 간단히 말해 게으른 것이다.
새로운 보수가 출현하기를 갈망하고 있는 시민들은 많다. 하지만 지금 한국당은 ‘기승전색깔론’에 빠져있다. 색깔론이 금과옥조(金科玉條)인 것이다.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저 웃기는 일이다. 에드먼드 버크(1729~1797)라는 영국 정치인은 보수주의의 원조로 알려진 인물인데, 꽤 유명한 언명을 남겼다. “변화시킬 수단을 갖지 않은 국가는 보존을 위한 수단도 없는 법이다.” 철저한 보수주의자이면서도 보수를 하기 위한 개혁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보수의 유언(遺言)’이란 책에서 이 말을 한층 쉽게 풀었다. “18세기 버크는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혁신을 통해 변신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다. 보수는 지키는 것과 고치는 것을 똑같이 중시한다. 수구와 다른 점이다.”
현재의 보수가 진보의 대안세력이 될 수 있을까. “아니올시다”가 답이다. 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김세연 원장은 지난주 한 토론회에서 “(당이) 극단적으로 우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중도 통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간 투표자를 안을 수 있어야 집권이 가능하다”면서 “건전한 보수 정당으로서의 철학과 이념을 통해 정체성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한국당으로는 이른바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당내의 이런 목소리가 먹혀들지 회의적이다. 2019.04.1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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