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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객닷컴] 늦가을에 시와 노래를 생각하다

다른 주제로 글을 쓰려다 바꿨다. 순전히 계절 탓, 쓸쓸한 만추(晩秋) 탓이었던 것 같다. 준비하던 칼럼 주제, ‘강제징용 판결 이후 우리의 현실적 대안’도 충분히 의미는 있었다. 자유한국당이 겪는 내분과 한국 보수의 미래도 그랬다.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은 얼마나 달라질까도 관심사였다.

 

그러나 솔직히 내 마음은 복잡한 세상에서 한 가닥 위로를 찾고 있었다. 온갖 사건 사고로 얽히고 설킨 세상 얘기 말고 뭐 다른 거 없나? 며칠 전 신문 한 귀퉁이에서 이런 기사가 눈에 띄었다. ‘시 읽다보면…어느새 면역력이 쑥쑥’이란 건강 관련 기사였다. 기사에 따르면 시를 구상하고 외우면 인지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소리 내어 읽으면 구강건조도 해소된다. 또 호흡이 깊어지면서 림프액 순환이 원활해지고 면역력이 높아진다.

 

요컨대 시를 읽고 쓰고 낭송하는 것이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극복에도 좋고 복잡한 마음을 추슬러 힐링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기사에서 적시하지는 않았으나 ‘건강’은 몸과 마음을 아우르는 것이라고 본다. 육체와 정신은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7일은 입동이었다. “춥고 건조한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건강을 돌아보고, 시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에 ‘따스한 목청’을 건네보면 어떨까”라고 기사는 권한다.

 

ⓒ픽사베이

문득 옛날 신문사 논설위원 때 쓴 칼럼이 기억난다. 2011년 11월 송경동 시인이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죄’로 구속된 사건을 계기로 쓴 것이다. 그 때도 절기는 만추였다. 칼럼에서 나는 ‘시를 쓸 수 없다’란 시를 통해 “아름다운 이야기도 한번 써보고 싶은데” 절박한 현실이 그런 시를 쓸 수 없게 만들었다며 안타까워 한 송 시인의 심정을 전했다. 그는 “미안하다. 시야”라고 했다.

 

시인과 작가는 소설 ‘25시’ 작가 게오르규가 말한바 잠수함 속의 토끼 같은 존재다. 토끼는 사람보다 먼저 산소 부족에 반응해 호흡곤란으로 죽는다. 토끼는 경고등이다. 시인도 그러하다. 시인이 예민한 감수성을 잃어버리면, 고통스러워할 줄 모르면 세상이 위험에 처한다.

 

이건 비단 참여문학적 견지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개인 얘기를 한다면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가 좋다. 산문에 없는 시의 여백이 좋다. 논리보다는 직관과 영감, 사변보다는 통찰력과 감수성이 더 와 닿는다. 그래서 시 ‘국화 옆에서’가 지닌 절창성이 새롭다.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라고 노래한 미당의 상상력, 감수성에 탄복한다.

 

시와 노랫말은 공통점이 많다. 특히 시인의 감성과 정서를 풀어놓은 서정시의 경우 노랫말과 거의 동일시되곤 한다. 서정시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게 음악성, 즉 운율과 리듬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발생학적 근거도 있다. 영어로 서정시와 노랫말은 모두 liryc을 쓴다. 서정시와 노랫말이 같은 개념인 것이다. 필자도 아까 ‘국화 옆에서’를 평가하며 ‘노래’했다고 썼다. 노랫말이나 시나 기본적으로 청각예술인 것이다. 서정성 짙은 가수를 음유시인이라 일컫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노랫말과 시 사이에 단단한 벽이 있는 건 아니다. 우리 가요사를 보더라도 일제강점기에는 전문 작사가와 기성 문인 출신 작사가 두 부류가 공존했다. 기성 문인인 이광수, 주요한, 김억, 이서구, 정인섭, 박영호, 김용호, 조명암, 윤극영, 이하윤, 박노홍 등이 훌륭한 ‘가요시(노랫말)’를 썼다.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것도 많다. 1970년대 저항시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1975)에는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출신 이성현이 곡을 붙였고 1997년 안치환이 노래했다.

 

 내 머리는 너을 잊은지 오래
 내 발길도 너를 잊은지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1절 가사

 

또 정지용의 ‘향수’를 박인수, 이동원이 불렀다(1989·김희갑 작곡). 김현수의 ‘토함산’을 송창식이(1978), 고은의 ‘세노야’를 양희은이(1971·김광희 작곡), 김남조의 ‘그대 있음에’를 송창식이(1976) 노래했다. 박두진의 ‘해야’를 조하문이 개사해 불렀고(1987), 고은의 ‘가을편지’를 김민기가(1971), 정호승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안치환이(1990), 김동환의 ‘산넘어 남촌에는’을 박재란이(1965·김동현 작곡), 고은의 ‘작은배’를 조동진이(1974),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마야가(2003·우지민 작곡) 불렀다. 김광섭의 ‘저녁에’를 유심초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80·이세문 작곡)라는 제목으로 부르는 등 시를 노래로 만든 수많은 사례가 있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마지막 낙엽들을 우수수 떨어뜨린다. 이 쓸쓸한 만추에 시와 노래가 위로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