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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위로다

옹점이가 부른 트로트

 옹점이가 누군가. 이문구(1941~2003)의 ‘관촌수필(冠村隨筆)’에 등장하는 어린 시절 집안의 식모다. 정 많고 주관이 뚜렷한 열여섯 살 소녀다. 어렵던 그 시절의 노래, 트로트를 정말로 좋아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 소설 3편 ‘행운유수(行雲流水)’에 중심인물로 나오는 그런 옹점이의 모습들을 살펴보려 한다. 우리는 소설 속 옹점이를 통해 옛 트로트의 정서를, 거기에 담겨 있는 애환을 대리 체험할 수 있다. 관촌수필은 1977년 나온 8편의 연작소설집인데, 충청도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작가가 옛일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원작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이문구만의 독특한 해학적 문체와 사투리를 그대로 살렸다.

 

 

이문구와 관촌수필

 

 

   옹점이를 아는 총각들이 그녀를 좋아한 것도 빼어난 노래 솜씨에 반한 거였다.
 “페엥- 저것이 소리 한 가지는 말쉬바위(曲馬團) 굿패들보담 빠지지 않으리라.”
 할아버지가 나무라다 말 정도로 그녀는 노래를 푸짐하게 불러대었고 목청도 다시없이 좋았다. 그녀가 떠벌리기를 가장 즐겨하던 노래는 작가가 기억하기에 <황하다방>이었다. 아궁이 앞에 가랑이를 쩍 벌리고 앉은 채 한창 신명이 나면, 삭정이 잉걸불에 통치마에서 눋내가 나는 줄도 모르고 부지깽이가 몇 동강이 나도록 부뚜막을 두들겨 장단 치며 가락을 뽑아냈던 것이다.

 

 목단꽃 붉게 피는 사라무센 찻집에
 칼피스 향기 속에 조는 꾸-냥…
 내뿜는 담배 연기 밤은 깊어가는데
 가슴에 스며든다 새빨간 귀거리

 

 한가락 뽑고 나면 으레 하던 말이 있었다.
 “아씨, 올 갈에 바심(타작)허면 오와싯쓰표 유성기 한 대만 사유. 라지오버덤 조끔만 더 주면 산대유.”
 어머니가 “시끄럽게 유성기가 다 뭐냐. 니 창가 듣는 것만두 지긋덥구 진절머리 난다 얘”라고 일축하면 그녀는 다시,
 “장터 가가에 가면 유성기 소리판두 고루고루 쌨던디… 심연옥 소리, 장세정 소리, 박단마, 금사향, 이난영, 신카나리아 소리…”
 “알기는 똑 귀뚜리 풍월허듯기…”
 “고려성, 이부풍, 천하토 작사가 젤루 맘에 들던디… 강남춘, 진방남, 이애리수 소리두 여간 안 좋아유.”
하고 바람든 소리를 한바탕 늘어놓고 나서 다시 노래를 불러제낀다.

 

 

 

                          장세정의 <연락선은 떠난다>가 수록된 레코드

 

 

 

 호동왕자 말채쭉은 충성 충-짜요
 모란공주 주사위는 사랑 앳-짤세
 충성이냐 사랑이냐 쌍갈랫 질을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별두 흐리네

 

 “작것아, 뭐 탄내 난다. 지발 불 좀 보거라.”
 그녀는 자기가 가사를 바꾸어 부르는 재치도 있었다. 그 중에는 작가가 아직 안 잊은 것도 있다.

 

 죽 끓는 부엌짝 아궁지 앞에
 동냥허는 비렝이야 해가 졌느냐
 쉬지 말구 놀지를 말구 달빛에 밥을 벌어
 꿈에 어리는 건건이 읃어서 움막 찾어가거라

 

 이 노래는 1939년 백년설이 부른 <대지의 항구>(남해림 작사, 이재호 작곡)를 개사한 거다. 원곡은 이렇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말을 매는 나그네야 해가 졌느냐/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 찾아가거라”

 

 작가는 말한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요즘도 술집 술상머리나 라디오에서 니나노가 흘러나오면 잃어버린 지 오래인 동심이 불현듯 되살아나곤 한다. 잊혀진 노래-그것도 유행가를 들어야만 비로소 철없은 어린 시절이 되새겨진다. 옹점이한테 그런 노래들을 배워가며 뛰놀던 기억이 가장 그립기 때문이리라.

 

 옹점이가 이문구네 집으로 들어온 것은 그녀 나이 일곱살 때였다. (옹점이가 작가보다 10년 위이니 작가는 그 3년 뒤 태어난 거다.) 이 소설 1편 ‘일락서산(日落西山)’엔 그 때 얘기가 나온다. 할아버지가 물었다.

 “그래 너는 몇 살이나 되었다더냐?”
 “지 에미가 그러는디 제년이 작년까장은 제우 여섯살이었대유. 그런디 시방은 잘 몰르겄슈.”
 “그래 늬 이릠은 무엇이라 부르더냐?”
 “먼젓것인디유.”
 “먼젓것이라… 아직 이릠이 웂더란 말이렷다.”
 “…”
 “늬 에미가 너를 즘촌(店村:질그릇 굽는 마을) 옹기 틈목에서 풀었다더구나… 오날버텀 이릠을 옹젬(甕點)이라 허거라.”
 이게 옹점이란 이름을 호적에 올리게 된 사연이다. 옹점이는 어려서부터 귀동냥으로 배운 노래를 곧잘 불렀다. 아궁이 앞에서 나물을 다듬으며 “쌍고동 울어울어 연락선은 떠난다아…”를 읊조렸다. (이 노래는 박영호 작사, 김해송 작곡의 <연락선은 떠난다>이다. 1937년 장세정이 애절한 콧소리를 섞어 불렀다. “쌍고동 울어 울어 연락선은 떠난다/ 잘 가소 잘 있소 눈물젖은 손수건/ 진정코 당신만을 진정코 당신만을 사랑하는 까닭에/ 눈물을 흘리면서 떠나갑니다 (아이 울지 마세요) 울지를 말아요”)

 

 그러다가 옹점이는 나이가 차 시집을 간다. 어머니는 시댁에서 행실을 조심하라고 누누이 타이른다. “…그러구 지발 그 개갈 안 나는 창가 좀 구만 불러라.” 얼마 후 6·25전쟁이 터졌고 남편은 군대에 갔다. 소식이 끊긴 남편은 한참 뒤 유골로 돌아왔다. 옹점이는 시집살이를 포기하고 친정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작가는 전쟁 뒤인 국민학교 5, 6학년 적에 옹점이를 마지막으로 만난다.

 

 들려온 소식은 옹점이가 약장수 패거리를 따라다니며 노래를 부르더라는 거였다. 한다하는 가수라고도 했다. 광천장에서 봤다는 이, 홍성장에서 봤다는 이, 청양장에서 그러더라는 이, 들리는 소문은 요란했지만 우리는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사실이었다. 작가가 대천장에서 직접 그녀를 보게 된 것이다.

 

 ‘행운유수’의 마지막 장면이다. 장날, 하학하는 길에 누군가가 옹점이가 지금 약장수 패거리 틈에 끼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하기에 그쪽으로 치달려갔다. 걸쭉한 약 선전이 끝나고 악사가 기타를 치는데 그 사이로 옹점이가 눈에 들어왔다. 작가가 아뜩해진 눈앞을 겨우 챙겼을 때는 그녀의 노래가 그의 가슴을 뒤흔들기 시작한 다음이었다.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1939·고려성 작사, 이재호 작곡)이었다. 옹점이는 그 노래를 그만큼 뽑을 수 없이 잘 불렀다.

 

 

                          <나그네 설움>이 실린 백년설 레코드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죽마다 눈물 고였다…

 

 작가는 눈앞이 캄캄하고 다리가 후들거려 심신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는 장터를 튀쳐나와 오금껏 뛰고 있었지만, 그녀의 고운 목소리와 훌륭한 가락은 달아나는 그의 뒤통수에 매달려서 줄곳 뒤쫓아오고 있었다.

 

 선창가 고동소리 옛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관촌수필은 트로트가 옛날 우리네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음을 실감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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