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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위로다

노래가 위로다

 살면서 위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엔 위로받을 곳을 찾기 힘들다. 그나마 노래가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 나는 그런 생각에서 이 칼럼을 쓰고 있다. 위로란 뭘까. “괜찮아, 잘 될 거야”라고 다독여주는 것이다. 이한철이 자작곡 <슈퍼스타>(2005)에서 그렇게 노래한다.

 

 지난 날 아무 계획도 없이 여기 서울로 왔던 너
 좀 어리둥절한 표정이 예전 나와 같아
 모습은 까무잡잡한 스포츠맨 오직 그것만 해왔던
 두렵지만 설레임의 시작엔 니가 있어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 될 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너만의 살아가야 할 이유 그게 무엇이 됐든
 후회 없이만 산다면 그것이 슈퍼스타…

  

   널 힘들게 했던 일들과 그 순간에 흘렸던
 땀과 눈물을 한 잔에 마셔 버리자 오우 워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 될 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나나나나나나 나나나 나나나나나나나…
 너만의 인생의 슈퍼스타
                         <슈퍼스타> 가사

 

                                                 이한철

 

 

 노래는 첫 부분에서 ‘서울’로 온 나라고 했지만 그곳은 ‘세상’이나 ‘지구’라 해도 상관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다 지구에 불시착한 이방인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핑핑 돌아가는 지구이고 서울이다. 그곳에서 ‘슈퍼스타’를 자처한다. 누구나 바깥에서 슈퍼스타를 찾는 이 시대에, “너만의 살아가야 할 이유 그게 무엇이 됐든 후회 없이만 산다면 그것이 슈퍼스타”라고 다짐한다. 그렇다면 설사 착각일지라도 박수 보낼 수 있다. 국민 응원송이 될 만 하다. 특히 “괜찮아 잘 될 거야”를 반복하는 후렴에선 러시아인들이 잘 쓰는 “다 잘 될 거야”란 말이 생각난다. 러시아엔 타냐 불라노바라는 우리로 치면 김수희급 가수가 있는데 그가 부른 <깔르이벨나야(자장가)>란 노래에도 이 말이 나온다. 

 

 

타냐 불라노바의 <깔르이벨나야(자장가)>

 

 

   자장 자장 내 아가
 밤이 왔단다 밝으려면 아직 멀었고
 난 조용히 자장가를 부르지
 곰인형더러 아빠라 부르지 말아라
 인형 발을 잡아당기지도 말고
 내 잘못이 크구나
 모든 아가들한테 다 아빠가 있는 건 아니란다
 난 더 이상 울지 않아 그건 지난 일이야
 난 너와 함께 있으니까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야…(부딧 프쇼 우 나스 하라쇼)
              <깔르이벨나야(자장가)> 가사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야”란 가사는 러시아로 “부딧 프쇼 우 나스 하라쇼”다. 러시아인들이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는 말이다. 이 노래는 자장가 형식이지만 내용은 남자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와 함께 꿋꿋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여자의 노래다. ‘곰인형더러 아빠라 부르지 마라’며 ‘아가들한테 다 아빠가 있는 건 아니야’라고 타이르며.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타냐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후반부에서 눈물을 흘린다. 감수성이 뛰어난 가수 같다.

 

 위로받을 곳이 없다

 

 살면서 가슴 아픈 사연, 위로가 필요한 시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그것을 크게 실존적 아픔과 사회적 아픔, 둘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표현은 거창하지만 실존적 아픔은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다. 갈수록 취직이 어려워지고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지는 세상, 그건 사회적 아픔이다. 물론 두 아픔이 항상 두무모 자르듯 나눠지는 건 아니다. 세월호 참사엔 실존적, 사회적 아픔이 뒤섞여 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듣다 소중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죽음은 그 하나하나가 실존적인 아픔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거대한 사회적·구조적 부조리가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그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며 사회적 위로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작 위로받을 곳은 별로 없다. 증거가 있다. 뉴스만 접하면 십중팔구 기분이 상한다. 나쁜 소식들로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위로를 주고받는 세상이 돼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진실규명을 해달라며 단식투쟁하는 세월호 유족들을 비아냥거리며 ‘폭식투쟁’을 한다. 항공사 경영진이라는 이유로 매뉴얼대로 승객 서비스를 안 했다고 억지를 쓰며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슈퍼갑질’을 한다. 많은 경우 마음에 상처받는 건 다름 아닌 사람 때문이다. 감정노동자들, 갑을관계의 을들이 그렇다.


 근래 잉여사회, 감시사회, 모멸감사회, 단속사회, 허기사회, 과로사회 등 한국사회를 ‘무슨 무슨 사회’로 규정하는 책과 담론들이 쏟아졌는데, 나는 여기에 ‘위로 부재 사회’를 추가하고 싶다. 나는 경향신문 재직 때 ‘위로받을 곳이 없구나’란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전략) 탐욕과 독선에 사로잡힌 세상에서 상처받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종교를 찾아 그곳에서 위로와 안식, 평화를 얻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절박하게 위로를 찾게 만든다. 다른 곳에서 위로를 얻을 수 없을수록 더욱 그렇다. 때론 정치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가 위로가 돼 줄까. 어림없다.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민, 민생, 상생, 공정, 소통, 법치 등 수많은 가치들을 얘기했지만 하나같이 말 따로 행동 따로다. 신뢰할 수 없는 정치지도자로부터 위로받을 국민은 없다. 이 땅의 최고 기업이라는 삼성은 위로를 줄 수 있을까. 아니올시다다.
 …정부도 기업도 아니라면 교회는 어떤가. 불행히도 답은 아니다. 이 땅의 대형교회들은 정치·경제 권력 뺨치도록 탐욕적이며 권력화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사회에 편만한 탐욕과 독선, 물량주의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앞장서는 모습이다. …탐욕에 빠진 사회에서 위로받고 싶을 때 교회는 안식처인가. 물량주의에 집착해 본원적 성찰을 잃어버린 교회가 많다. 사람 아닌 신을 보란 말은 귀에 안 와 닿는다. 위로받을 곳이 없다.【주1】

 

 노래가 위로다

 

 그러나 노래는 이 삭막한 세상에서 한 줄기 위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특정 정치인에게 기대를 걸고 지지를 보낸다. 고통과 기대 때문이다. 이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울분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다. 그러나 번번이 배반당한다. 음악은 최소한 그러지 않는다. 그리 크지는 않아도 잔잔한 위로와 공감과 기쁨을 줄 수 있다. 스포츠나 등산, 영화, 소설도 우리를 위로할 수 있겠지만 노래만큼 일상적이고 접근이 쉬운 건 못된다.


 음악의 접근성은 다른 예술에 비해 월등하다. “하루에 한 편씩 꼬박꼬박 영화를 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직접 공연장으로 발품을 팔아야 하는 연극은 더 힘들다. 뮤지컬도, 무용도 마찬가지다. 미술관도 그렇다. 아니, 공연장과 미술관은 시간도 시간이지만 주머니도 넉넉해야 한다. …TV에, 인터넷에, 길거리에, 대중음악은 질리도록 넘쳐난다. 넘치고 넘치는 것, 이것이 대중음악의 본질이자 힘이다.”【주2】또 과거 레코드라는 새로운 발명품은 재생시간이 대략 3분 전후로 한정된 것이 대중음악에서 매우 전형적인 32마디 형식 혹은 AABA 형식의 노래들을 만들어냈다.【주3】이렇게 정착된 ‘3분의 미학’도 노래를 더욱 친근하게 만들었다.


 “음악은 인간이 본성상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큰 즐거움을 안겨준다.” 중국의 공자가 남긴 말이다. 그로부터 2천년이 지나 철학자 니체가 비슷한 말을 했다. “나의 우울한 감성은 완벽한 심연의 은신처에서 편히 쉬고 싶다. 그래서 내게 음악이 필요하다.”【주4】공자, 니체는 음악이 위로가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가수들이 하는 얘기들도 이와 비슷한 게 많다. 한대수는 특이하게 음악을 고통과 연관 짓는다. “난 음악이란 고통이 있어야만 나온다고 생각한다.…또 사람들은 고통이 있는 음악을 즐긴다. 발라드가 뭔가. 슬픈 거 아닌가.…난 나 홀로 자신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했다.”【주5】그가 고통에 대해 말하는 걸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고통을 이해해야 위로를 전할 수 있다고. 진정한 위로는 공감이 전제가 된다. 만드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어떤 고통에 대해 먼저 공감해야 위로를 주고받는다는 말이다. 슬플 때 신나는 노래가 아니라 슬픈 노래가 위로가 되는 건 이런 이치다.


 시나위의 신대철에게 과거에 비해 여러 세대가 함께 즐길만한 히트곡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그가 “별로 아픔이 없어서 그런 거 같다. 그다지 깊이 생각할 일도 없고, 몸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 예전에는 들으면서 뭔가 생각할만한 곡들이 많았다. (요즘은) 심각한 거 보다는 심플한 음악을 선호한다”고 대답한 것도 공감에 관한 얘기라 할 수 있다.【주6】


 장필순은 어떤 뮤지션으로 기억되고 싶은가란 물음에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내 음악에 위로를 받는다. 그런 이들과 같은 감성을 유지해야 위로가 되는 음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대답한다.【주7】

 

 

                                         장필순

 

   이언과 지이로 이뤄진 2인조 밴드 못도 자신들의 음악이 “니가 힘들고 어려운 거는 우리도 잘 알고 있고 모두가 그런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다며 다독이는 느낌으로 다가가고 싶다”고 말했다.【주8】


 동물원의 멤버 박기영은 이런 말을 했다. “처절한 시대, 한쪽으로 서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사람들, 그리고 소심하고 자기확신이 없던 사람들에게 동물원은 평범한 위로의 언어로 다가섰다. 일상을 뛰어넘는 예술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주9】


 작곡가 가수 겸 프로듀서 윤상도 “내게 있어서 음악은 위안이었던 거 같다”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극복하기 힘든 감정을 음악을 통해서 극복한다든지 아니면 다른 음악을 들으면서 미친 듯이 즐거워한다든지. 난 역시 음악에서 위안을 찾는 세대였던 거지. 요즘 음악에서 부재한 것도 그런 걸 거다.”【주10】

 

 미국의 뇌 과학자 대니얼 레비틴은 자신의 레코드 프로듀서 경험을 살려 음악 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뇌과학적으로 재미있게 분석한 책 ‘호모 무지쿠스’를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지금까지 녹음된 음악은 추정하건대 100억곡 이상(그 근거까지 밝히지는 않았다.)”이라며 “음악의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알아야 할 음악이 얼마나 많은지”라고 했다.【주11】레비틴은 인간이 선사시대부터 최근까지 불러온 수많은 노래들을 여섯 유형으로 구분했다. 그것은 우애, 기쁨, 위로, 지식, 종교, 사랑의 노래이다. 여기서 ‘위로의 노래’는 여섯 유형 가운데 하나로 끼어있지만 나는 모든 노래들이 다 위로를 주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위로가 모든 노래의 공통요소란 점에서다.


 음악엔 치료, 이른바 힐링 효과도 있다. 음악은 오늘날 음악치료 프로그램처럼 고대 주술사의 치유에도 쓰였다. 그리스인들은 정신병 발작을 가라앉히는 데 하프 음악을 활용했다. 음악치료의 예는 고대 이집트, 인도, 아메리카 원주민 등 지리적으로 완전히 다른 문화에서도 발견된다.【주12】

 

 어떤 노래가 위로일까

 

 그러나 어떤 노래가 위로냐는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는 게 답이다. 수많은 노래가 있고, 수많은 취향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다만 내게 이 노래가 이렇게 와 닿았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다.

 

                                         안치환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깊을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 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지를 으음 음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사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가사

 

 안치환이 부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1998·정지원 작사, 안치환 작곡) 가사다. 한마디로 인간 긍정의 노래다.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란 노랫말은 철학적 언명이란 생각마저 든다. 아무리 사람끼리 상처를 주고받는 세상이라 해도 결국 사람이 희망인 거다. 안치환이 이 노래에 대해 했다는 말도 음미할 만 하다. “나보고 저항가수, 대중가수, 대중과 운동권을 아우르는 가수, 별별 이야기를 다 하지만 정말 불필요한 이야기다. 90년대 초반 이념의 시대가 붕괴하고 3집 앨범부터 대중가요 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는데 ‘어떻게’ 살아남는가, 이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남녀관계에 관한 노래가 99퍼센트인 가요 판에서 이런 노래가 대중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 이건 내게 소중한 경험이었다.”


 대중가요가 대부분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다지만 이렇게 인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인간미(人間味) 넘치는 노래도 사람들에게 통한다. 사랑 노래라고 해도 그저 ‘사랑타령’에 그치지 않는 노래도 있다. 해바라기의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1998·이주호 작사 작곡) 같은 곡은 어떤가. 이 사랑은 ‘죽고 못 사는’ 뜨거운 사랑은 아니다. 서로 의지하며 먼 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적 사랑이다.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우리 가는 길에 아침 햇살 비치면 행복하다고 말해주겠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때론 지루하고 외로운 길이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때론 즐거움에 웃음 짓는 나날이어서 행복하다고 말해주겠네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가사

 

 위로의 노래로 꼽을 수 있는 것 가운데 <사노라면>이 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데도
 고운 님 함께 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오손도손 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하략)

                                        <사노라면> 가사

 

                                    전인권(오른쪽)과 허성욱

 

 <사노라면>엔 사연이 조금 있다. 이 노래는 원 제목이 <내일은 해가 뜬다>로 1966년 김문응이 작사하고 길옥윤이 작곡해 쟈니리가 불렀다. 출시된 직후인 1967년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때도 올테지”라는 가사가 현실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금지곡으로 지정되는 일도 겪었다. “그럼 지금은 나쁜 시절이란 말이냐?”라는 것이 이유였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1980년대 들어 운동권을 중심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지게 되고 대학가 운동가요집에도 <사노라면>이란 제목으로 수록되는데, 작자 미상 혹은 구전가요 등으로 기록되면서 출처가 불분명한 노래가 되었다. 1987년 전인권과 허성욱이 ‘추억들국화’라는 음반에 이 곡을 <사노라면>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될 때도 작자 미상으로 소개됐다. 이 때문에 처음 이 노래를 부른 쟈니리는 자기 노래임을 밝힐 길이 없어 끙끙 앓다가 다행히 가요평론가 박성서씨가 소장해왔던 음반을 공개하면서 2004년에야 원작자와 노래한 가수가 밝혀진다. 그런 곡절을 겪은 탓에 현재 알려진 가사도 쟈니리가 불렀던 것과 조금 다르다.

 

 ‘노래가 위로다’라는 인식은 ‘위로만으로 족할까’란 의문을 동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위로는 문제 해결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음악평론가 최유준은 김민기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 비평에서 이런 말을 한다. “대중매체에 실린 음악은 역사적 풍랑을 겪어온 대중들의 정서를 위무하거나 그들을 위한 오락의 수단으로 여겨져왔을 뿐이다.”【주13】이 말은 김민기의 노래극이 우리 대중문화사에서 이뤄진 최초의 ‘불온한’ 대중매체 실험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노래의 역할은 그것으로 족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위로의 사전적 의미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준다’는 것이다. 대중들의 정서를 위무하고 오락거리가 돼준다는 것, 그게 어딘가. 이 위로 부재의 시대에. 문제 해결은 그 다음의 일이다.

 

【주1】경향신문 2011년 3월 16일자 오피니언 김철웅 칼럼
【주2】윤호준, 주머니 속의 대중음악(바람의 아이들, 2011) 18~19쪽
【주3】김창남 엮음, 대중음악의 이해(한울, 2012) 대중음악과 테크놀로지 72쪽
【주4】대니얼 레비틴, 호모 무지쿠스-문명의 사운드트랙을 찾아서(마티, 2009) 103쪽
【주5】한국 대중음악 100대명반 인터뷰(도서출판 선, 2009) 한대수편 85~86쪽
【주6】같은 책 신대철편 224쪽
【주7】같은 책 장필순편 129쪽
【주8】같은 책 못 편 333쪽
【주9】레전드 100 아티스트(한권의책, 2013) 동물원 157쪽
【주10】같은 책 윤상 171쪽
【주11】대니얼 레비틴, 호모 무지쿠스-문명의 사운드트랙을 찾아서(마티, 2009) 12쪽
【주12】같은 책 103쪽
【주13】최유준, 음악문화와 감성 정치(작은 이야기, 2011)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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