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세상살이입니다. 그러나 정작 정치도 종교도 뉴스도 우리를 위로해 주는 건 찾기 어렵습니다. 나는 그래도 가요가 고단한 삶에 다소나마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래가 위로다'는 주제로 가요 이야기를 이따금 올리려고 합니다. 필자가 베이비부머 세대인만큼 이야기는 7080 노래나 트로트가 중심이 될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이름 하나가 상상력을 모락모락 피어오르게 한다. 노래 속에 나오는 여인의 이름이 그렇다. 안다성이 부른 <에레나가 된 순희>(1958·손로원 작사, 한복남 작곡)는 제목부터 강한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순희 하면 무슨 느낌이 드나. 옛날에 아주 흔했던 여자 이름이다. 바둑이, 영희, 철수와 함께 국민학교 국어책에도 너무 많이 나와  고유명사라기보단 보통명사 같은 이름이다. 노래에선 그 순희가 에레나란 서양 이름을 쓰는 여자가 됐단다. 대체 무슨 곡절이 있었길래.
 가사에 따르면 순희는 한국전쟁을 겪은 뒤 어찌어찌하다 카바레 댄서가 된 여인이다. 이 여인은 과거엔 ‘석유불 등잔 밑에 밤을 새면서 실패감던’, ‘시집간 열아홉살 꿈을 꾸면서 노래하던’ 순희였다. 명시는 안 돼 있어도 이 역전 카바레는 미군을 상대하는 곳일 성 싶다. 거기서 이름조차 에레나로 바뀐, 말소리도 이상하게 달라진 순희가 오늘밤도 춤을 추고 있다. 가끔씩 목이 메어 울기도 하면서 말이다. 곡은 흔치 않은 탱고 리듬이다. 강렬한 탱고 액센트와 트로트의 결합이 도리어 구슬픈 느낌을 준다. 가슴 찡하게 한다.

 

 그날 밤 극장 앞에 그 역전 캬바레에서/ 보았다는 그 소문이 들리는 순희
 석유불 등잔 밑에 밤을 새면서/ 실패 감던 순희가 다홍치마 순희가
 이름조차 에레나로 달라진 순희 순희/ 오늘 밤도 파티에서 춤을 추더라
                                                        <에레나가 된 순희> 1절 가사

 

 탱고

 

 에레나는 엘레나의 일본식 발음이다. 오림픽, 부루스 등 이른바 ‘식민지 발음’인데, 이런 발음이 묘하게 옛날 맛을 낼 때가 있다. 이 여자 이름도 실은 서양에선 흔한 것이다. 대담하고 지적인 연주로 이름난 엘렌 그리모(Helene Grimaud)라는 프랑스 피아니스트가 있다. 영어권에서 쓰는 이름 헬렌도 같은 어원이다. 하지만 이 이름이 가장 흔한 나라는 러시아일 거다. 러시아에서 엘레나는 우리의 순희처럼 평범한 이름이다(러시아어로 정확한 발음은 ‘옐례나’다.) 차이라면 우리는 이런 ‘고전적’ 이름이 거의 사라진 반면 러시아엔 여전히 많다. 주로 레나란 애칭을 쓴다.
 순희인가, 순이인가. 정확한 이름이 헷갈려 찾아보니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엔 이 곡이 두 이름으로 모두 등록돼 있다. 하긴, 순희면 어떻고 순이면 어떠랴. 이 지극히 한국적인 이름은 옛날 우리들의 딸, 누이, 애인의 통칭이나 마찬가지였음을. 최선옥 시인이 지난 7월 웹에 올린 ‘순이’란 글을 소개한다.

 

 ‘메리나 해피도 있는데 하필 순이가 뭐예요?’ 강아지 이름이 촌스럽다고 아이가 불만입니다.
 ‘순이가 어때서. 갓 한글 튼 일학년, 국어책의 순이와 영희와 철수는 얼마나 정겨웠는데.’
 그러고 보니, 애달픈 순이도 있었네요. 공장이며 담 높은 집으로 불려가던 어린 순이들.
 편물기에 실 짱짱하게 엮던 손, 한 올 한 올 가발을 심던 손, 빨래를 하던 작은 손이 아껴 모은 목돈을
 생계비며 오라비 학비로 보내던 눈물겨운 순이들이었습니다.…(중략)
 어느 이웃 할머니의 성함이 하필 우리 집 순이와 같아서 멋쩍게 웃다가
 귀한 순이, 고마운 순이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에레나가 된 순희>는 <댄서의 순정>(김영일 작사, 김부해 작곡, 박신자 노래)을 연상케 한다. 1959년 나온 음반엔 ‘땐사의 純情’이란 고풍스런 이름이 붙어 있다. 이 댄서에겐 이름이 없다. 그저 좋든 싫든 춤춰야 하는 게 팔자다. 상대편도 마찬가지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처음 본 남자 품에 얼싸안겨/ 푸른 등불 아래 붉은 등불 아래/ 춤추는 댄서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울어라 색소폰아”(1절 가사). 이 노래는 1970년대 중반 김추자 등 여러 가수가 리메이크해 대학가를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다. 트로트 곡 치고는 이례적 성공이었다. 대학생들이 이 곡을 역설적인 사회풍자로 받아들여 애창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당시 방송윤리위원회는 이 노래의 ‘무드와 가사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방송금지 처분을 내렸다.

  순이란 이름은 김민기가 만든 <강변에서>(1974)에도 나온다. 어린 여자 공장노동자 순이의 고단한 퇴근길을 그린 노래다.

 

   서산에 붉은 해 걸리고 강변에 앉아서 쉬노라면/ 낯익은 얼굴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온다
 늘어진 어깨마다 휑한 두 눈마다/ 붉은 노을이 물들면 왠지 맘이 설레인다
 강 건너 공장의 굴뚝엔 시커먼 연기가 펴오르고/ 순이네 뎅그런 굴뚝엔 파란 실오라기 펴오른다
 바람은 어두워가고 별들은 춤추는데/ 건너 공장에 나간 순이는 왜 안돌아 오는 걸까
 높다란 철교 위로 호사한 기차가 지나가면/ 강물은 일고 일어나 작은 나룻배 흔들린다
 아이야 불 밝혀라 뱃전에 불 밝혀라/ 건너 강변의 오솔길 따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라라라 라라라  열여섯살 순이가 돌아온다/ 라라라 라라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아이야 불 밝혀라 뱃전에 불 밝혀라/ 건너 강변의 오솔길 따라 우리 순이가 돌아온다
                                                                                          <강변에서> 가사

 

 공장 굴뚝의 시커먼 연기와 순이네 뎅그런 굴뚝의 파란 실오라기 연기를 대비시킨 게 돋보인다.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노래다. 송창식이 취입한 1974년 음반을 들어보면 후렴 부분의 ‘열여섯살 순이’를 ‘열아홉살 순이’로 바꿔 부르고 있다. 당시 공연윤리위원회가 ‘근로기준법상 16살은 취업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개작을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서슬 퍼런 유신 아래서 열여섯살 순이는 제 나이조차 솔직히 밝힐 수 없었던 거다. 1993년 나온 김민기 전집에 와서야 이 ‘열여섯살’ 등 그 동안 김민기 노래의 훼손됐던 부분들이 복원됐다.
 순이가 등장하는 노래는 이것 말고도 많다. <순이 생각>(1978)은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화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재회할 설레임을 노래한다. 오매불망 시골에서 그를 기다리는 여자가 바로 순이다. 만약 그 이름이 경아나 희야였다면? 안 어울렸을 거다. 백영규가 작사 작곡했고 그가 속한 혼성듀오 물레방아가 불렀다. 송대관이 부른 노래에도 <우리 순이>(1990·진남성 작사 작곡)가 있다. 이 곡 속의 순이는 백영규가 부른 순이와는 달리 ‘가난했다는 그 한가지 이유로 서울로 간 순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여자’다. 그런데 소식이 끊겼다. 화자는 그래서 절규한다. ‘난 찾아야 해 우리 순이’라고. 김국환도 꽃순이란 여자를 찾는 노래를 불렀다. <꽃순이를 아시나요>(1988·김중순 작사, 김희갑 작곡)에서 ‘꽃순이를 아시나요 꽃처럼 어여쁜 꽃순이/ 나의 눈에 이슬 남기고 내 곁을 떠나간 꽃순이’라고 슬퍼한다.
 우리 가요의 ‘고전’ 반열에 들어 있는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1953·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도 헤어진 여자를 찾는 노래란 점은 같다. 그러나 이들을 헤어지게 만든 건 전쟁이다. 가사에서 금순이가 애인인지 피붙이인지도 분명치 않다. 죽느냐 사느냐의 극한 상황 속에서 사랑타령은 사치스런 감정이었을 게다. 가족이든 친지든 전쟁통에 뿔뿔이 흩어져 생사를 알 길이 없는 피난민들의 절박한 심정이 녹아 있다.

 

 

   

   부산 중앙동의 40계단과 기념비/위키피디아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굳세어라 금순아> 1·2절 가사

 

  금순이는 흥남철수 때 헤어진 걸로 보인다. 중공군의 한국전쟁 참가로 전세가 뒤집히자 1950년 말 유엔군과 민간인 수십만명이 흥남항을 통해 탈출해 부산에 정박했다. 이듬해 1월 4일에는 서울마저 중공군에 빼앗기게 된다. 노랫말의 ‘흥남부두’ ‘일사(후퇴)’는 물론 ‘국제시장’ ‘영도다리’는 한국전쟁의 비극을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금순이’도 거기에 포함될 만 하다. 이 노래는 전쟁 참상을 매우 실감나게 묘사한 덕에 ‘국민가요’ 급 인기를 누렸다고 하니까. 가요평론가 이영미는 ‘흥남부두의 금순이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독특한 제목의 가요비평 책을 쓰기도 했다.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그때 그 금순이는 어디서 무얼 하고 살았을까.
 진짜 금순이를 찾으려는 노력도 실제로 있었다. 부산 국제신문은 2014년 초 남북 이산가족 중 실제 이름이 금순이인 사람을  찾기 위한 취재를 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당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2만9035명 중 생존자는 7만2491명으로, 생존자 가운데 이름이 ‘금순’이인 북의 어머니나 누이를 찾는 신청자는 무려 1250명에 이르렀다. 북의 가족을 찾는 ‘금순’이란 이름의 남쪽 신청자도 272명 있었다.【주1】
 태진아의 <옥경이>(1989·조운파 작사, 임종수 작곡)에서 이런 질문에 묵묵부답인 옥경이란 여인을 만날 수 있다. 고향, 이름,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등을 물어봐도 일절 대답하지 않는다. 특기할 것은 태진아의 아내 이름이 옥경이라는 사실이다. 약동적인 스윙 리듬의 이 곡을 고생해온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애모의 심정을 담아 노래한 것이 큰 성공을 거뒀다. 태진아는 “집사람 이름으로 만든 노래이고, 1988년 미국에서 돌아와 재기에 성공해 오늘을 만들어준 노래”라며 이 곡에 대한 고마운 심정을 밝혔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 마주앉은 당신은/ 언젠가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인데
 고향을 물어보고 이름을 물어봐도/ 잃어버린 이야긴가 대답하지 않네요
 바라보는 눈길이 젖어있구나/ 너도 나도 모르게 흘러간 세월아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도 대답없는 고개숙인 옥경이
                                                                            <옥경이> 가사

 

 방실이가 부른 <서울탱고>(1990·소산 작사, 방기남 작곡) 속 여인도 옥경이와 비슷한 과거사 침묵형이다. 다만 ‘아무것도 묻지 말고 술이나 한잔 하고 가라’는 적극적 체념 같은 게 느껴진다.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내 이름도 묻지 마세요/ 이리저리 나부끼며 살아온 인생입니다
 고향도 묻지 마세요 아무것도 묻지 마세요/ 서울이란 낯선 곳에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세상의 인간사야 모두 다 모두 다 부질없는 것/ 덧없이 왔다가 떠나는 인생은 구름같은 것
 그냥 쉬었다 가세요 술이나 한잔 하면서/ 세상살이 온갖 시름 모두 다 잊으시구려
                                                                                      <서울탱고> 가사

 

 1970년대 포크음악에도 꼭 소개해야 할 여자 이름이 있다. 노래 제목이기도 한 <화>다. 1972년 백순진이 작사 작곡했고, 듀엣 4월과 5월이 불렀다. 조금은 독특한 외자 이름을 쓴 탓에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는지 앨범엔 ‘和’란 한자명까지 병기돼 있다. 곡 서두의 ‘라라(한 옥타브 위)미솔라라’가 네 번 반복되는 기타 리프가 개성 있다. 가사도 서정성이 뛰어나다. 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온통 그 남자 그 여자와 관계있는 게 된다. 그러니 동그란 반지를 봐도 떠오르는 건 화의 얼굴이다. 이런 걸 감정이입이라고 한다. 이 대목은 잘 알려진 국민적 가곡 <얼굴>(1967·심봉석 작사, 신귀복 작곡)쪽으로 연상작용을 일으킨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아얀 그 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젖은 짚단 태우듯’도 절묘한 표현이다. 이에 대해 ‘뱅쿠버 사는 영만리 촌놈’이란 블로거가 이런 글을 올렸다. “ 이 가사를 듣고 놀랐다. 어떻게 젖은 짚단을 태워보았지? 촌에서 젖은 짚단 태우는 게 얼마나 힘들고 눈물겨운 일인지 안 해 본 사람은 모르는데, 저런 말이 노래가사에까지 나오다니…. ”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또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젖은 짚단 태우듯
 너와 맹세한 반지 보며/ 반지같이 동그란 너의 얼굴 그리며
 오늘도 애 태우며 또 너를 생각했다/ 오늘도 애 태우며
 이대로 헤어질 순 없다/ 화가 이 세상 끝에 있다면
 끝까지 따르리 그래도 안되면/ 화 안된다 더 가지마
                                                  <화> 1절 가사

 

 이름이 없거나 모르는 여인들도 노래엔 나온다. 이장희는 <애인>(1973)에서 ‘눈이 몹시 커다란 이름 모를 아가씨’와의 이별을 슬퍼했다. 김정호는 ‘말없이 기다리다 쓸쓸히 돌아서서’ 떠나가는 <이름 모를 소녀>(1974)의 뒷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내게 더욱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노래는 둘 다섯의 <긴머리 소녀>(1975· 손철 이두진 작사, 이두진 작곡)다. 젊은 시절 이 노래를 들을 땐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 속 장면들이 오버랩되곤 했다. 어쩐지 분위기가 닮았기 때문이다. 비, 개울, 징검다리 같은 노랫말이 그렇다. 소설 속 소녀는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는데 노래에선 긴머리 소녀인 게 다르긴 했지만.
 나는 이 글을 쓰면서야 그 느낌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둘 다섯의 이두진이 “이 노래가 소설 ‘소나기’의 윤 초시네 증손녀를 모델로, 소설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것”이라고 밝혔던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동시에 이 노래에는 집을 떠나 도회의 공단에서 일해야 했던 어린 농촌 소녀들을 위한 뜻도 담았다고 밝혔다. 이 사실도 이번에야 알았다.

 

 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모습/ 달처럼 탐스런 하얀 얼굴
 우연히 만났다 말없이 가버린/ 긴머리 소녀야
 눈 먼 아이처럼 귀 먼 아이처럼/ 조심 조심 징검다리 건너던
 개울 건너 작은 집의 긴머리 소녀야/ 눈 감고 두 손 모아 널 위해 기도하리라
                                                                           <긴머리 소녀> 가사

 

              

                                     4월과 5월

 

  역시 이름은 안 나오지만 노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이 있다. 한국전쟁 중인 1953년 피난지 부산에서 박재홍이 부른 <경상도 아가씨>(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에 나오는 여성이다.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러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고향길이 틀 때까지 국제시장 거리에/ 담배장사 하더래도 살아 보세요
 정이 들면 부산항도 내가 살든 정든 산천/ 경상도 아가씨가 두 손목을 잡는구나
 그래도 뼈에 맺힌 내 고장이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영도다리 난간 위에 조각달이 뜨거든/ 안타까운 고향 얘기 들려 주세요
 복사꽃이 피던 날 밤 옷소매를 부여잡는/ 경상도 아가씨가 서러워서 우는 구나
 그래도 잊지 못할 가고 싶은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경상도 아가씨> 가사

 

 이 노래를 들으면서 무엇보다 와닿는 건 이 경상도 아가씨의 따뜻한 마음씨다. 그 마음씨가 모든 가사에 구구절절 배어 있다. 그래서 노래의 주인공은 이북이 고향인 피난민이지만 중심 인물은 제목대로 경상도 아가씨다. 지금은 거의 안 쓰는 말이지만 옛날엔 계단을 층층대라고들 했다. 피난온 나그네가 여기에 앉아 울고 있자 경상도 아가씨가 다가와 위로의 말을 한다. 국제시장에서 담배장사든 뭐든 해서라도 꿋꿋하게 살라고 격려해 준다. 전쟁통에 누군들 편안한 사람이 있겠냐만 그녀는 손목을 잡고 함께 울어주기까지 한다. 상대의 힘든 처지에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모습이다. 공감, 그게 위로의 첫단계인 것이다.
 지금도 부산 중심가인 중앙동엔 이 노래의 모델이 된 40계단이 남아 있다. 또 그곳엔 이 노래 1절 가사가 적혀 있는 ‘사십계단기념비’가 세워졌다. 세월이 흐르면 노래만 남고 자취는 사라지는 법이다. 하지만 이 곳은 노래의 자취도 보존된 경우다. 노래 곡조는 구슬프지만 리듬은 역설적으로 경쾌하다. 특히 ‘피난살이 처량스러 동정하는 판자집에’ 부분에선 절묘한 엇박자를 구사해 노래의 맛을 냈다. ‘조선의 슈베르트’로 불렸던 작곡자 이재호(1919~1960)의 재능이 돋보인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가요로 <굳세어라 금순아>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이별의 부산 정거장>(1954·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이다. 이 곡에도 경상도 아가씨가 나온다. 쓰라린 피난살이를 마치고 환도 열차로 떠나는 부산역 에서의 이별 풍경을 절절하게 그려냈다. 경상도 아가씨는 여기서도 울고 있다. 모진 세월을 겪으며 쌓인 정 때문이었을까. 2절은 그 심정을 안다는 듯 ‘기적도 목이 메어 소리 높이 우는구나’고 한 술 더 뜬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 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우네 이별의 부산 정거장
                                 <이별의 부산 정거장> 1절 가사

 

【주1】국제신문 웹페이지 2014년 1월 21일자, ‘신 영도다리…만남과 부활 <상> 금순이를 찾아서, 누이야 살아 있다면 예서 만나자-영도다리는 오늘도 기다린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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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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