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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 믈라디치

1995년 7월6일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군은 유엔에 의해 안전지대로 지정돼 있는 스레브레니차를 둘러싸고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스레브레니차에는 수만명의 이슬람계 민간인들이 3년째 계속되고 있는 내전을 피해 몰려들어 있었다.

6일째인 11일 세르비아계 군총사령관인 라트코 믈라디치 장군이 스레브레니차로 진입했다. 그날 저녁 믈라디치는 유엔 평화유지군 소속 네덜란드군 사령관 카레만스 중장을 불러 이슬람계에게 무기를 버리라는 최후통첩을 제시했다.
이튿날 여성과 어린이들을 이슬람 지역으로 보내면서 세르비아계는 웬일인지 12살부터 77살까지의 남자들을 전쟁범죄 혐의 조사를 이유로 따로 분류했다. 그날 이후 이슬람계가 대량학살됐다는 증언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2차대전 후 최악의 대량학살’은 이렇게 진행됐다. 5일 동안 살해된 소년과 남자는 7,500~8,000명으로 추정된다. 작년 7월11일에는 스레브레니차에서 10주기 추도식이 열렸고 새로 발굴·수습된 610구의 주검이 안장됐다. 이 학살을 지휘한 믈라디치는 대량학살과 인도주의에 대한 범죄, 전쟁법 위반 혐의로 옛 유고국제전범재판소(ICTY)에 의해 기소돼 있는 상태다.

이런 신분임에도 내전이 끝난 뒤 그는 한동안 베오그라드에서 값비싼 레스토랑에 드나들고 축구 경기를 보는 등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나 그의 보호자였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이 2001년 체포된 이후 행방을 감춰버렸다. 간혹 믈라디치가 여전히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 군대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전우’들의 생일 축하를 위해 보스니아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사냥을 즐긴다는 말이 떠돌았다.

국제적 체포망을 잘도 빠져나가던 믈라디치가 마침내 붙잡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직 체포설이 최종 확인되지는 않고 있으나 세르비아 정부와 ICTY 주변에서는 긍정적인 신호들이 나오고 있다. 그를 영웅으로 추앙하던 세르비아인에게는 안타까움이 될지 모르나 사필귀정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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