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시인:나무위키(상상도)
윈시인들이 쓰던 말에는 ‘추상(抽象)’이 없었다. 예를 들어 원시인들은 ‘걷다’란 일반적 개념의 동사 대신 ‘어슬렁어슬렁 걷다’ ‘허겁지겁 걷다’와 같이 구체적인 행동에 따라 다른 동사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인간 사고활동이 깊어져 추상능력이 발달하면서 추상성을 가진 언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밤하늘의 달도 최초에는 ‘초승달’ ‘반달’ ‘보름달’처럼 별개의 명사로 불렸다는 설이 있다.
과학적 검증은 어려워 보이지만 이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인간이 사물을 추상화·보편화하는 능력이야말로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위대한 진보였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자연과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철학적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언어의 추상화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 추상성은 동시에 훗날의 불행을 배태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어의 추상성이 사유의 깊이와 다양성이란 미덕과 더불어 언어개념 자체의 혼란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언어의 혼란은 같은 한국어로 같은 어휘를 구사한다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의사소통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무슨 지역이나 세대간 사용언어의 차이를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를 추상성의 미로 속에 가두는 것은 서로 확연히 다른 말을 하는 경우보다 ‘같은 언어로 다른 말하기’일 때가 많다. 언어 의미의 혼란상이 극대화되는 순간은 말의 고유한 의미에 정략성과 이해관계가 깊이 투사될 때이다. 그 비극적 결과는 가치의 혼란과 단절이다.
- 의미 제각각 해석땐 혼란-
정치인·언론·논객들은 민주 평화 애국 인권 정의와 같은 가치지향적인 말들을 쏟아내지만 그 속뜻은 천차만별이다. 각자의 주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전혀 다른 맥락과 논리로 사용되기 십상인 것이다. 지난주 극우단체들이 서울시내에서 벌인 집회에는 어김없이 ‘빨갱이 정권’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한 참석자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잘 사는 나라를 보고 눈감고 싶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 진정성 자체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오로지 고착적인 이데올로기의 색깔로 덧칠된 민주와 애국·안보의 가치는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엊그제 야당 대표에 의해 ‘국가정체성’을 흔든다는 비판을 받은 현정권은 어느모로 보나 좌파정권과 거리가 멀다. 이런 정권을 겨냥해 야당 대표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 수호의지를 피력한 것은 극우적 색깔론의 반영일 뿐 그 의미가 모호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미국 권력이 이라크에 대한 명백한 침략행위를 화장하기 위해 내건 민주화와 인권, 한국 정부의 파병논리에 등장하는 평화 재건 역시 언어의미를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미국의 노엄 촘스키 교수는 언어학자답게 이런 현상을 명쾌하게 해석한 바 있다. “심지어 중앙정보국(CIA)도 우리와 똑같은 방식(언어)으로 세상을 본다. 그들의 접근방식과 분석법은 좌익계 인사들과 무척 흡사하다. 다만 동일한 현상에서 끌어내는 결론이 서로 다르다. 그 차이는 결국 가치관의 차이를 반영한다.”
- 말과 이름 옳게 사용해야 -

#공자:나무위키(상상도)
공자도 일찍이 말과 실질의 혼란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춘추시대 말기의 사회 정치적 혼돈이 명(名)과 실(實)의 혼란에서 비롯된 것으로 파악하고 정명론(正名論)을 제시했다. 공자의 정명론은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것”을 설파한 것이지만 말과 이름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언어학자 소쉬르는 언어를 사회의 공통적 언어체계인 랑그와 개인의 언어행위인 파롤로 분류했다. 파롤은 랑그라는 사회적 약속 아래서만 의미를 갖는데 파롤이 랑그에 우선하는 것 같은 언어의미의 혼란은 결국 사회적 가치 혼란의 동어반복일 수도 있겠다.
2004.07.25 18:57〈김철웅 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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