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과 빈곤에 관한 뉴스가 일상적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옛날에도 그랬던 것 같다.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쓴 <사회문제의 경제학>을 보자. “브룩클린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에서, 태어난 지 이틀 된 아기의 사망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배심원단이 소집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지저분한 방에는 부서진 의자, 형편없는 침대, 빈 위스키병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침대에는 죽은 아기의 엄마인 소녀가 흐트러진 자세로 누워 있었고, 의자에는 아기 아빠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채로 널브러져 있었다. …도대체 경찰관, 경찰서, 빈민구호소, 자선단체는 무얼 했단 말인가?”
저자는 우리가 매일 신문에서 이와 비슷한, 아니 더 나쁜 기사를 접한다고 썼다. 책이 나온 건 1883년이다. 산업화 초기로 컴퓨터·TV는커녕 라디오도 보급되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어제 일어난 일 같다.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연상시키는 내용도 있다. “철도왕들은 지선 철도, 운송회사, 역마차 노선, 증기선 항로까지 지배하게 되며, 소도시를 만들거나 없앨 수도 있고, 운송이 필요한 사업을 하는 사람의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해서” 돈을 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빈곤 실태는 어떤가. 옛날 미국에 비해 절대적 빈곤층 비율이 줄어든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엔 없었던 개념, 즉 양극화와 이에 따른 상대적 불평등과 박탈감은 훨씬 심해졌을 것이다. 엊그제 보도를 보면 지난해 주택 보유 상위 1%(12만 9900명)가 보유한 주택 수는 91만 채였다. 2008년(10만 5800명, 36만 7000채)보다 54만 3000채 늘었다. 이에 따라 상위 1%의 1인당 보유 주택 수는 평균 7채로 10년 전에 비해 두 배나 증가했다. 상위 10%가 보유한 주택도 450만 8000채로 10년 전(242만 8700채)보다 207만 9300채 증가했다.
집값 안정과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해 정부가 신도시 등 주택 공급을 늘려도 결국 혜택은 다주택자에게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사자인 경실련은 “다주택자들의 자산 가치는 크게 늘어난 반면 무주택자들은 내 집 마련 기회를 박탈당했고 집값 상승을 뒤따라간 전·월세 가격 부담으로 빚에 시달리면서 자산 격차가 더욱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가계소득 양극화도 역대 최악 수준으로 심해졌다. 지난달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4분기 소득 5분위 배율(최하위 20%와 최상위 20%의 소득 비율)은 5.3을 기록했다. 이 값이 클수록 소득 불평등이 심하다는 의미다. 최하위 20%인 1분위의 소득은 작년 2분기보다 0.04%(월 600원) 늘어난 132만 5000원에 그쳤다. 반면 최상위인 5분위 소득은 942만 6000원으로 전년 동기(913만 5000원) 대비 3.2% 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많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18 자살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자살 사망연도 기준 2년 연속 건강보험 의료급여 대상이었던 계층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66.4명으로 평균 자살률(2017년 기준 24.3명)의 2.73배에 달했다. 의료급여는 기초생활수급권자 등에 대해 본인부담금을 국가가 부담해주는 제도이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부론' 발간 국민보고대회에서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하고 있다. 2019.09.22./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그런 점에서 자유한국당이 얼마 전 내놓은 ‘민부론’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정부 여당이 추진해온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약발이 잘 먹혀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제 1야당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득주도성장론의 대안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황교안 대표는 이날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한 정책이란 것을 되풀이 강조하고, 경제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며 ‘특효약’을 써야한다고 주장했다. 민부론은 현 정부의 국가주도 경제를 민간주도의 자유시장 경제로 전환해 203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달성, 2030년까지 가구당 연간 소득 1억 원, 2030년까지 중산층 비율 70% 달성을 골자로 한다.
경제 성장의 과실이 개인과 가계에 우선적으로 귀속되도록 해 국민이 부자가 되는 길이 ‘민부론’의 핵심이라며 국부 경제에서 민부(民富)의 경제로 경제활성화, 국가주도 경쟁력에서 민주도 경쟁력 전환을 제시했다. 그러나 민부론은 해묵은 시장근본주의를 다른 말로 포장한 것일 뿐이었다. 또 ‘어떻게’라는 설명이 빠져 구체성이 없었다. ‘안티 문재인’에 힘을 쏟다가 알맹이를 빠뜨린 것이다.
황 대표는 “심각한 천민사회주의가 대한민국을 중독 시키고 있다”며 예의 색깔론도 빼먹지 않았다. 근거 제시는 없었다. 천민자본주의는 들어봤어도 천민사회주의는 금시초문이다. 시대착오적 색깔론을 새것인 척 위장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란 생각이 든다. 2019.09.3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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